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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사라진 인사동
2022년 12월 30일 (금) 21:24:36 박영 작가 renews@renews.co.kr
   
(박영 작가)

인사동은 더 이상 인사동이 아니다. 주말이나 휴일에 어쩌다 인사동에 나갈 일이 있어 발걸음을 했다가 마음이 상해서 돌아온다. 크고 작은 오래된 화랑들이 사라지고 골동품 가게들도 대부분 없어졌다. 작은 골목골목 사이로 다니면서 할머니가 주인인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낡은 벽과 의자, 테이블에 둘러앉아 막걸리와 전을 먹던 그런 가게들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뿐만이 아니다. 외국인들과 내국인들도 이상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닌다. 왕이나 왕자 등 왕족들의 의상을 입고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인사동을 벗어나 경복궁 안에서도 볼 수 있다. 고증까지는 바랄 수 없지만 너무나 어설프고 남루하기까지 한(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의상들을 걸친 남녀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레이스로 장식되고 꽃무늬가 프린트된 개량한복(?)을 입고 굽이 높은 뭉툭한 구두를 신고 이브닝 백 비슷한 걸 들고 다닌다. 외국인 청년이 왕의 의상을 걸치고 잔뜩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저마다 셀카란 걸 찍고 있다.

저 의상들이 어디서 났을까? 바보처럼 궁금해 했는데 그런 옷들을 몇 시간 대여해주는 곳이 있다고 한다.

나는 한숨을 쉬기보다는 울화통이 치민다. 어디 조용한 찻집에 앉아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 볼까하고 찻집을 찾는다. 찻집이란 게 또 마음에 안 든다. 벽에 걸어놓은 그림도 실내 장식도 다 어설프다. 서울 시내의 아무 곳에나 있는 카페라는 곳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한가하게 화랑을 다니면서 그림 구경을 하고 골동품 가게에 들러서 주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일들이 꿈만 같다.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인사동으로 데리고 나가서 음식을 먹고 민화를 보여주고 하던 일들을 지금은 할 수가 없다. 기념품점에서 파는 물건들도 국적불명의, 대부분 중국제로 보이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인사동을 벗어나 북촌길로 들어서면 또 새로운 풍경을 만난다. 크고 작은 기와집들 대부분이 개조되어서 옷가게, 액서서리 가게들로 변모해 있고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이젠 고궁으로 들어가 보자. 경복궁이 개방된 것에는 유감이 없지만 경복궁의 여러 전각들과 왕의 집무실, 금천교, 아름다운 뜰에는 휴일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마치 유원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300여년 버려져 폐허처럼 돼있던 경복궁을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걸고 가난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며 경복궁을 복건 했던 대원군이 이 모습들을 보면 어떤 심정이 될까. 조선의 다사다난했던 역사의 숨결이 묻어 있고 그래도 지킬 것이 있어 고군분투하며 치열한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이곳에 존재했었다는 생각을 하면 화가 나기보다는 묘한 배신감마저 든다. 핸드폰을 치켜 들고 사진을 찍고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괴이한 의상들을 입고 휘젓는 그런 장소여도 괜찮은 곳이 아니다. 이곳은 지방에서 수학여행을 온 어린 학생들이 역사를 배우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외국인들에게 자랑하고 잠깐이나마 옛사람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그런 장소여야 마땅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 때도 지금도 이곳에서 살아남은 이 나무들이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싶다.

한 때 나의 산책길이기도 했던 인사동에서 가구나 소품을 사들이며 뿌듯했었고 화랑들에서 신인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즐겁기도 했던 그 인사동 길의 정취 따위가 오래 전에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못내 서운하고 씁쓸하다. 아니 쓸쓸하다.

가끔 책을 빌리러 들렀던 화동의 정독도서관 벤치에 앉아 테이크 아웃한 종이컵의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이 산란해진다. 정년퇴직해서 한가해진 것이 아닐까 멋대로 상상케 만드는 노신사가 저 쪽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괜히 궁금해진다.

세월이 아니 자본주의의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이라 하기에는 그렇다 해도 얼른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제 영원히 나의 추억이 담긴 인사동은 사라졌다. 흑백사진 속에서나 가끔 볼 수 있으려나......

[박영(朴怜)은 TV 및 라디오 드라마 작가다. 대표작으로 MBC TV 드라마 ‘사랑의 계절’, 시추에이션드라마 ‘알뜰가족’, KBS 라디오 ‘대공수사실록’ 등이 있다. 장편소설도 출간했다. ‘정오의 탈선’ ‘김마리라는 부인’(영화화 됨), ‘내일은 천국이고 싶다 ’ ‘러브어게인’ ‘동경에서 서울까지’ ‘해피 투게더’ 등이다. 그 외 신문, 잡지 등의 매체 기고가로 활동했다. 해외에서 이브 몽땅(배우, 가수). 도이 다카코(일본 사회당 당수). 루이제 린저(독일 작가). 등을 인터뷰했고, 국내에서는 정·재계 및 예술인들을 다수 인터뷰했다. 편집자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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