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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대비, 탈북 대학생을 글로벌 리더로 키우는 여걸(女傑)
-‘한인나눔운동(KASM)’ 나승희 대표를 만나다
2022년 04월 22일 (금) 09:12:57 장상인 대표 renews@renews.co.kr

4월 19일. 필자는 여의도에서 귀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는 ‘쩐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IFC였다. 기다리는 동안 여의도 공원에서 바람 따라 날아온, 라일락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불현듯 노천명(1912-1957) 님의 시(詩) ‘4월의 노래’가 떠올랐다.

“사월이 오면은/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 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도로 건너편에서 가방을 메고 나승희 대표가 활기차게 걸어왔다.

   
(미국에서 온 나승희 대표/ 사진: 장상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 마신 나 대표는 ‘한인나눔운동(KASM/ Korean American Sharing Movement)’에 대해서 설명했다.

‘한미나눔운동(KASM)’이 아니라 ‘한인나눔운동’

“대체로 영어의 뜻대로 ‘한미나눔’으로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한인나눔운동’입니다. 저희는 남북통일의 성공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회적·의식적 모임입니다. 우리는 이해관계자들이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협력하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운동은 전 세계 다른 많은 분단된 사람들에게도 모범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거침없이 내뱉는 말이었으나, 그 속에 담긴 주제가 뚜렷했다.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는 나승희 대표)

“1994년부터 ‘북한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법륜 스님을 비롯해서 서경석 목사님 등 많은 종교인들이 북한 사람들을 살리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저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그 후, 7대 종교지도자들이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을 전개했다. 미국·일본·독일 등 지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참여를 부탁했다. 그 중 하나가 ‘한인나눔운동’이다. ‘한인나눔운동’은 1997년 1월 워싱턴 D. C에서 시작했다. 개신교를 중심으로 바자회 등을 3-4년 전개하면서 북한 돕기 운동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UN의 인사들도 참여했다. 북한을 돕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워싱턴이 유일했다. 그 후 연합회를 만들어 LA등으로 확대했다. 6-7년 살아남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순수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1-2년은 잠시 휴식기가 있었다.

그 후 한국의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가 적극 지원했다. 나 대표의 말이다.

“홍규덕 교수님의 덕택으로 2003년부터 국제 리더십 포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을 워싱턴으로 불러서 3주간 리더십 교육을 시켰죠. 저는 2010년부터 대표를 맡아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폴란드에 근무할 때 북한 사람들이 떠올라...희망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나 대표가 1991년-94년 폴란드에 근무할 때였다. 40대-50대 초반의 근로자들의 미래가 불안해 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찌그러진 차를 타고서, 비엔나 등 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지 않습니까? 저는 불현듯 갇혀 사는 북한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조기 은퇴하고 북한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제약으로 북한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2012부터 탈북 대학생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통일을 대비한 인재를 양성해야 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나 대표는 우리 사회의 ‘통일부재’를 지적했다. 그래서, ‘2013년부터 탈북 대학생들을 워싱턴에 불러서 교육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유는 있었다.

“15-20년 후를 위해서 그들을 글로벌(Global) 인재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혈혈단신 남한으로 내려오는 과정도, 그들에게는 치열한 투쟁이었습니다...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염원하면서 필사적으로 탈출했던 것입니다. ‘내 마음 속의 내일은 오늘보다 낫다’는 신념이었을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세계 최강국이자 민주주의 시장국가인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에서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대표의 말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가, 내가 앉아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나를 둘러싸있는 동그라미가 몇 개인가 알아야 한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큰 그림을 이해하고 구체적인 이슈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비용이 아니라, 통일 자금

나 대표가 내린 ‘통일자금’의 정의다.

“통일비용이라는 말을 하지 말고, ‘통일자금’이라고 해야 합니다. 인프라(Infra)를 비롯해서 미래 산업에 투자를 해야 하니까요. ‘통일비용’은 소모성이잖아요. 비용과 자금은 차이가 있어요. 동기와 욕구니까요...한국인들은 DNA가 특별합니다. 인구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한 5,000만 명, 북한 2,500만명...통일 후 1억 인구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나 대표는 ‘아이를 낳으라고 말만하지 말고,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계속되는 나 대표의 말이다.

“북한 말을 쓴다고 왕따를 당한 학생들이 많았어요. 경상도·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도, 유독 북한 사투리에 대해서 꾸짖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40여년 미국에 살면서 일 년에 두 번씩(봄·가을) 한국을 오고가는 나승희 대표-워싱턴에 유학 온 탈북 대학생들의 동창회에 참석하러 온단다. 때로는 그들의 결혼식도 참석하면서. 나 대표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온몸을 다 받쳐서 일을 하고 있을까.

   
(한국에서의 세미나 장면/ 사진: 나승희 대표 제공)

“미국에서 살면서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한시도 저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형제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나 대표는 무슨 이유로 미국 생활을 했을까.

“중학교 때, 평화봉사단 미국 선생님(Rovert Valentine)으로부터 영향을 벋았습니다. 영어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의 조지 워싱턴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필자는 나 대표에게 40년 간 미국에 살면서 두 나라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별 차이가 없어요. 서로 문화가 다르니까요.”

나 대표는 2시간 반의 인터뷰를 마치고서 점심 식사도 하지 않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 떠나는 모습이 참으로 멋졌다.

필자는 나 대표의 뒷모습을 보면서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이승원 著)에 담긴 ‘여행’ 이야기를 떠올렸다.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는 여행의 의미다.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경계 밖으로 떠남으로써 비로소 ‘주체-타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최영숙과 나혜석과 윤치호 등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의 여행은 일반적인 ‘해외 관광’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여행은 운명을 바꾸는 모험이었고,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세계를 향한 도전이었으며, 자신의 정체성과 대면하는 일이었다...고학의 길은 험난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물질의 고통을 이겨냈다.>

미국 국제금융공사(IFC)에서 23간 근무하다가 조기 은퇴한 ‘한인나눔운동’의 나승희 대표의 도전(挑戰)은 언제나 끝이 날까. 필자의 궁금증이 더해갔다.

(출처: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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