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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역사와 지명(地名)
2021년 02월 20일 (토) 17:13:00 편집팀 정리 renews@renews.co.kr
   
(안병호 작가: 동학사 가는 길, 천년의 불꽃, 오타 줄리아, 아름다운 사람 루이델랑드, 어링볼, 철의 왕국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지명(地名)은 함축된 역사를 품고 있다. 지명의 해석을 엉뚱하게 함으로 웃지 못 할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정체성을 상실하게 할 정도의 폐해가 적지 않다.

우선 ‘서울’에 대한 명확한 어원의 정의를 찾기 어렵다. 유명한 학자들이 많은데 당장 우리의 수도의 명칭의 유래에 대해 아이들에게 명확하게 가르쳐 줄 학문적 자료가 부족하다. 작가가 풀이하면 그야말로 ‘소설을 쓴다’고 할지 모르지만 안타까운 점이 한둘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지명에 확고한 역사가 내재되어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생각을 멈추고 자료를 챙겨본다. 사실적인 지명의 유래를 찾기 위해 땅의 내제에 대한, 근세 광업사적 분위기를 살핀다. 자료는 <김종호著/ 한국광업사와 한국광업진흥공사의 자료집>에 발췌했다.

<15세기 전반기에 조선정부는 새로운 수도건설과 무기제조사업을 위해 철의 생산을 강구하였다. 이들 사업에 대한 주무관서로서 선공감과 군기감을 두었으며, 여기서 필요로 하는 철은 농민들로부터 경작면적에 따라 수취하는 염철법(鹽鐵法)을 적용하여 조달하였다. 이 염철법은 농민들이 자체로 철을 생산하거나 구입하여 국가에 바치도록 한 공철제도였다. 한편, 지방의 각 영·진과 계수관의 도회제하의 무기제조장에서 소요되는 철은 산철읍에 관영철광업장인 철장을 개설하고 정부가 재력과 인력을 동원하여 채취·조달하였다. 철장은 전국에 20여개소였고, 각 철장에서는 정부가 파견한 철장관이 2백 여 명의 취련군을 모취(募聚)하여 일과제 생산을 하였다.>

<15세기 전반의 염철법과 철장제는 정부의 재정적 부담과 농민에게 끼치는 폐해가 컸기 때문에, 15세기 후반에는 이들 제도가 폐지되고, 철장도회읍과 인근 읍의 농민들을 춘추 농한기에만 동원시켜 철을 채납케 한 철장도회제가 채택되었다. 철장도회의 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동되었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것은 경기·강원도를 제외한 27개소가 있었다. 철장도회는 대부분 석철보다는 사철산지읍에 설치되었으며, 농민들은 강의 모래에서 철을 채취하였다.>

<철장도회제를 통하여 국용의 철물을 수취하는 과정에서 야장들에 의한 사경영의 야철수공업이 성장하게 되고, 이들 야철수공업자 중에는 정철(시우쇠)만을 채굴·제련한 정철장, 정철의 채굴·제련뿐 아니라 정철기구까지 제작한 주철장, 수철(무쇠)을 채굴·제련하고 부정과 농기구를 생산한 수철장, 동생산지에서 놋그릇을 생산한 유철장 등이 있었다. 이들 중 수철장들이 가장 광범위한 판로를 가지고 성장하여, 세종 초에는 10내지 20인 이상의 장인을 거느린 상당한 규모의 야장을 경영하게 된다. 이들 야철수공업의 성행과 농민의 심한 피역저항으로 인해, 철장도회제도는 15세기 말에 폐지되고, 철장소재읍에만 공철을 부과하고 철물수공업자들로부터는 장세를 징수하여 국용에 충당하기에 이르렀다. 15세기 이후 철물수공업이 성장함에 따라 철광의 개발도 촉진되어 ‘세종실록지리지’에 67개 읍이던 산철지가 1530년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83개 읍으로 증가되는데, 이들 산철지에는 주로 사철광이 많았다.>

   
(조선 초기의 서울 육조거리/ 사진: 서울 역사박물관)

<조선 초기 이후 철물수취체제가 변질되는 상황에서 임진왜란(16세기 말)을 맞게 되었고, 조총 등 군사무기의 대대적인 생산을 도모하기 위하여 도회제 생산이 강요되기도 하였다. 조총 제조를 위한 군수철광의 생산실태는 군아문 소관의 철점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금위영 등 경내의 오군문은 조총 등 무기제조를 위한 철물의 조달 경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야철수공업자들이 자리 잡은 산철지를 접수하거나 야철수공업자들을 군오에 편입시켜갔다. 이에 따라, 1594년(선조 27)에 재령의 철현둔, 1659년(현종 1)에 장연의 왕제둔, 1715년(숙종 41)에 재령의 갈산둔 등 당시 산철지로 유명했던 황해도 재령·장연 등지는 오군문의 절수지가 되었고, 그곳의 야철수공업자의 일부는 취철아병으로 편입되어 신철을 상납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철의 종류는 크게 생철과 숙철로 구분된다. 생철(수철 즉 무쇠)은 주로 부정·농기구 제작에 쓰였고, 숙철은 병기류와 견정을 요하는 각종 도구의 제작에 사용되었다. 생철과 수철을 제련하는 도구는 모두 풍상(풀무)과 야로(용광로)였지만, 풍상과 야로 간에 연결되어 있는 풍혈수에 따라 제련 과정이 달랐다. 같은 규모의 야로에서 생산되는 숙철량이 생철량에 비해 다소 적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숙철의 초출품을 신철이라 하여 신철 1근을 타련하면 정철의 열품 4냥이 생산될 정도였다.>

이러한 히스토리History)를 바탕으로 한 자취가 지명에 스민 흔적이 의외로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도 근본적 내력에서 이름 지어졌음을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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