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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을 보고 떠오른 조선의 성녀 오다 줄리아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2018년 03월 28일 (수) 09:33:05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권력자의 ‘착각’과 ‘만용’이 종국에는 파국 불러
-400여 년 전 슨푸성의 이야기가 차라리 울림 있어

 
미투(#MeToo)-온 나라가 벌집을 쑤신 듯하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치부(置簿)돼왔던 치부(恥部)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온 국민이 인지하고 있는 유명 인사들. 그들은 권력을 무기로 약한 여자들을 성폭행하는 등 몹쓸 짓을 일삼아 왔다. 종국에는 목숨까지 던지는 가해자들의 극한 상황들을 접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하나 짚어 봤다.
 
불타라 여름의 십자가 남쪽하늘 높이
밤의 어둠을 비추는 별자리는 눈물의 상들리에
마치 무지개처럼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

 
 일본의 유명 밴드 ‘서던 올 스타스(Southern All Stars)’가 작사·작곡한 노래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이다. ‘전설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다.
 
오다 줄리아의 유배지 찾는 일본인들...자발적으로 제(祭)에 참석해
 
 2008년 5월 18일. 필자는 도쿄 출장 중 다케시바산바시(竹芝棧橋) 선착장으로 갔다. 오시마(大島)·고즈시마(神津島) 행 선박이 깃발을 펄럭이며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끔한 제복을 입은 선원들의 움직임이 무척 분주했다. 출항 시각인 오전 7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수녀들과 할머니 신자들도 있었다. 한눈으로 봐도 ‘오다 줄리아 제(祭)’에 가는 발걸음이었다. 정각 7시가 되자 동해기선 소속의 제트선(船)은 우렁찬 뱃고동을 한바탕 울리더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배는 도쿄만(東京灣)을 뒤로하고 속도를 냈다.
 
 두 시간쯤 달리던 배는 첫 번째 기착지인 오시마(大島)에 도착했다. 이 섬은 오다 줄리아가 최초로 유배됐던 곳이기도 하다. 몇몇 사람이 오르고 내리더니 잠시 기항했던 제트선은 다시 뱃고동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망망대해. 따르던 갈매기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 고즈시마!’

 저 멀리 가물가물 큰 섬이 눈에 들어왔다. 목적지 고즈시마였다. 도쿄로부터 정확히 4시간이 걸렸다. 직선거리로 178㎞인데도 일반 객선으로는 13시간 반이 걸린다. 서울에서 예약한 우메다(梅田)라는 여관에 짐을 풀었다.
 
‘임진왜란의 피해자’...신앙과 정절을 지킨 그녀의 넋을 기려
 
도쿄 성당에서 온 신부와 신자들의 미사는 ‘오다 줄리아’의 겐쇼우비(顯彰碑) 앞 작은 광장에서 열렸다. 겐쇼비는 숨어있는 선행을 밝혀 세상에 널리 알리는 송덕비를 의미한다. 미사를 주재한 도쿄 교구(敎區)의 우라노 유우지(浦野雄二) 신부는 잔잔한 목소리로 강론을 했다. 
 
 “오늘 우리가 오다 줄리아 님의 겐쇼우비(顯彰碑) 앞에 모인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400여 년 전 조선에서 태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정벌에 따른 피해자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이 섬에 유배되어 복음을 전하다가 생을 마감한 줄리아 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 다 같이 기도합시다.” 
 
  신자들은 성호를 그으며 머리 숙여 기도했다. 필자는 도쿄 하치오지(八王子) 성당에서 단체로 온 도미자와 히테코(富澤日出子·67) 할머니와 쓰카모토 세치코(塚本世智子·54)씨에게 물었다. 
 
 “얼마 전 성당의 주보에 난 줄리아님의 글을 읽고 감동해서 이 제(祭)에 참석했습니다. 그 시대에 자신의 신앙과 정절을 지킨 숭고한 조선 여인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최근 줄리아 님의 전설 같은 사실을 접하고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무리해서 오기를 잘했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입니다.”
 
 필자는 “연약한 시녀를 마음대로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용을 베푼 권력자에게도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고 화답했다. 유배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참석자들은 미사를 마친 후 버스에 분승해서 ‘아리마’ 전망대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가다가 정상 부근에 이르러 도보로 갔다. 대형 십자가 아래에는 ‘줄리아 종언(終焉: 임종)의 섬’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우도성에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 동상-항상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녔다.


 <오다 줄리아는 조선의 전쟁 고아였다. 크리스천인 아우구스치노(小西行長)에 의해 일본에서 그의 양녀로 자랐다. 1612년 크리스천 탄압에 의해 체포되어 오오시마, 니이지마를 거쳐 고즈시마에 이송됐다. 쇼와 45년(1970년) 5월 25일 제1회 줄리아제(祭)가 시작된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다 줄리아도 이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느낄 수 있었을까. 외딴 섬에서 외로움과 고난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겠는가.
 

   
오다 줄리다의 묘지

 마을로 내려오자 인구 2000명 남짓한 작은 섬마을 골목마다 태극기가 휘날렸고 곳곳에 매달린 현수막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오다 줄리아의 묘지에는 커다란 태극기와 일장기가 꽂혀있었다. 묘비 중앙에 새겨져 있는 田(전)자는 “십자가를 감추기 위해 그렇게 표기했을 것”이라는 현지인의 설명이 있었다. 필자는 오다 줄리아의 묘지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오다 줄리아의 묘지 주변에는 작은 석상들이 많았다. 고즈시마에 유배돼 스러져간 이름 모를 사람들의 묘지였다. 고즈시마는 그만큼 열악한 일본 밖의 땅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400여 년 전으로 되돌려 슨푸성(駿府城)에서 벌어진 일을 스토리로 엮어 봤다.
 
일본을 천하 통일한 권력자...최소한의 양심과 관용 있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상

“저 아이가 누구의 시녀더냐? 참으로 절색이로구나! 저 아이를 불러오너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가 지목한 시녀는 다름 아닌 ‘오다 줄리아’이다.  정확한 나이나 가족관계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1596년 5월 일본에서 활동하던 베드로 모레홍(Petro Morejon)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됐다. ‘조선에서 오다’에서 ‘오다’라는 성(姓)을 얻었다는 설(說)이 있으나, 세례명 ‘줄리아’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558-1600)가 처형당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후궁의 시녀로 전락했다.
 
“그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줄리아입니다.”
“줄리아? 그럼 너도 기리시탄(크리스천)이더냐?”
“그러하옵니다. 기리스탄입니다.”
“허허. 이 궁(宮)에 기리시탄이 있었다는 말인가. 여봐라! 궁에 있는 기리시탄들을 모두 색출하라.”
 
 이에야스(家康)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궁(宮)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며칠간의 수색 끝에 14명의 공복들이 크리스천으로 밝혀졌다.
 
“저들을 모두 감옥에 가두어라.”

 그런 가운데서도 이에야스는 줄리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다시 줄리아를 불렀다.
 
“기리시탄을 버려라. 그렇다면 너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겠노라. 그리고, 너를 나의 측실에 봉하겠노라”
 
 “아닙니다. 저는 하느님께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보잘 것 없는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그 분의 뜻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에야스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하느님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독한 아이로다. 썩 물러가라.”
 
 이에야스는 진노했다. 궁 안은 다시 긴장감이 고조됐다.
 
“혹독한 형벌이 내려질 것이다.”
 
“이에야스님의 심기를 거슬렸으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 오늘날도 잊히지 않아
 
 일본을 천하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닌가. 그런데, 한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으니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에야스는 부하들에게 ‘오다 줄리아’의 신상에 대해서 조사하도록 명령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양녀이자 기리시탄이라고 합니다. 궁에서도 몰래 기도하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됐다고 합니다.”

   
오다 줄리아가 성(城)에서 몰래 기도했던 탑


“뭐라? 고니시(小西)의 양녀? 참으로 기분 나쁜 아이로이구나. 저 아이를 당장 멀리 일본 땅 밖으로 내쫓아 버려라. 40년 유배형이다.”
 
 결국 줄리아는 이에야스의 명령에 의해 이즈(伊豆)제도에 있는 오시마(大島)로 유배를 떠난다. 궁의 문무백관을 비롯해서 궁안의 모든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일개 시녀인 그녀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일본 최고의 권력자와 맞대응을 했으니 말이다. 1612년 3월  슨푸성(駿府城)에서 벌어진 일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인내심의 표상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의 유훈(遺訓: 죽은 사람이 남긴 훈계)은 400년이 지난 오늘날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회자(膾炙)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을 알아야 한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노라.”
 
 사람은 권력이나 재산 등 외적 평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인지하는 내적 평가가 중요하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권력을 과신한 나머지 연약한 여인들을 유린(蹂躪)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 이 칼럼은 [조선일보-조선pub]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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