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잇쇼켄메이(一生顯命)'라는 말이 있다. 일을 할 때나 공부를 할 때, 운동을 할 때도 '잇쇼켄메이'가 등장한다. 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목숨을 건다'는 뜻이다. '공부나 업무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말이다.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잇쇼켄메이(一生顯命)'의 어원을 거슬러 가면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92-1333: 일본의 봉건주의의 기초가 확립된 시기)에 영주(領主)가 기거하던 장(莊)을 바탕으로 '사무라이(侍)가 주인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다했다'는 잇쇼켄메이(一莊顯命)'가 있었다. 후일 장소(所)를 의미하는 '잇쇼켄메이(一所顯命)'로 바뀌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잇쇼켄메이(一生顯命)'로 자리 잡았다. 아무튼, '잇쇼켄메이'라고 하는 의미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의 느낌이 강하게 들어있다.

그런데, 필자의 장편소설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을 '잇쇼켄메이(一生顯命)' 번역한 일본인이 있다. 나고야(名古屋)에 살고 있는 '구메쇼죠(久米正三)'씨다. 그가 305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짧은 시간에 완역한 것이다. 필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라서 그의 메일을 받고서 입이 딱 벌어졌다. 지난 17일 한글로 보내온 그의 메일 전문을 옮겨본다.

<안녕하십니까.

오쓰보(大坪) 씨가 교보문고에서 산 책은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이었습니까?

실은 그의 이야기와 부동산신문 칼럼에서 장 선생의 새 소설 출판을 알고, 어떤 책인가 흥미 진진, 웹(web)에서 한 권을 주문했습니다.

시작은 했지만 자신의 어휘력 부족 때문에 읽혀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플롯을 모르면 재미없습니다. '글을 읽으면 바로 잊으니까 일본어 문장을 써서 남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에 5쪽, 두 달 간. 드디어 번역이 끝났습니다.

만세！

번역하다가 여러 상상이 나왔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아주 재미있는 것은 물론 일본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공부한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나에게는 즐거운 "한국어의 문화 센터"였습니다.

PDF파일을 첨부합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태블릿을 쓰시면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장 선생의 문체의 특징은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과 고로카(파푸아뉴기니)의 분위기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아마추어 번역의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스토리 라인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PAC(나고야중부전략연구회) 멤버들이 읽어 주면 좋을 것입니다. 주제넘다고 야단맞지 않을까？ 멤버들로부터 어떤 반응이 나올까? 호기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싶습니다.>

메일에 나타난 것처럼 구메(久米)씨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필자는 지금 그가 '잇쇼켄메이' 번역한 일본어 번역본을 읽고 있다. 그의 '잇쇼켄메이'는 '열심히 노력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너무나 어려운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해서 맨부커상을 받게 한 '데버러 스미스(28)'는 최근 기자 회견에서 "번역이란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완벽성을 추구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나아지는 것"이라면서 "번역에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독서의 즐거움과 작품 이해에 저해가 되진 않았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번역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으나 번역자의 정성과 진실 된 마음이 더 중요하다. '구메쇼죠(久米正三)'씨의 정성과 진실 된 마음에 대해 지면을 통해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