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4월이면 연상되는 'T. S 엘리어트'의 시(詩) <황무지>이다. '엘리어트'의 저주가 있어서 일까. 올 4월도 어김없이 대사건이 벌어졌다. 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 직전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내용과 고인(故人)의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지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꽃향기에 젖으며 환호한다, 라일락 향기는 아직 멀리 있으나, 온 시내가 온통 꽃구름이다. 하얀 벚꽃 때문이다. 벚꽃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원조(元祖) 싸움을 해왔으나, 최근 들어 중국이 이 논쟁에 가세했다. 서민들은 이러한 논쟁에 끼어들지 않고 꽃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지난 9일 필자는 기초·지반 분야의 전문기업 SE 이엑스티(대표 송기용)의 벚꽃놀이에 동참했다. 임직원들은 직위 고하를 불문하고 자신이 먹을 도시락을 비닐봉지에 들고 회사를 나섰다. 목적지는 안양천. SE 이엑스티 본사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필자가 직원들과 함께 안양천에 도착하자 하얀 벚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말 그대로 벚꽃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꽃 터널 아래에는 수많은 인파가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을 연상할 정도로 많았다. 직원들은 강둑의 중간 지점에 돗자리를 펴기 시작했고 송기용 대표(46)가 합류했다.

벚꽃길에서 SE 이엑스티 임직원과 송기용대표(좌로부터 네번째)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얼마든지 행복의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자연이 준 벚꽃아래서 싱그러운 봄바람을 맞으며 도시락을 까먹는 것도 행복 아닙니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작은 것이 중요합니다."

송기용 대표의 말이다. 이 회사는 8일과 9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2회에 걸쳐 임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봄 소풍을 한 것이다.

"올해로 세 번째로 진행하는 행사입니다. 격무에서 잠시 벗어나 가까운 곳에서 꽃구경을 하면서 소통을 하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멀리 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다. 가까운 곳에 힐링(Healing) 할 수 있는 곳이 많은데, 우리는 항상 멀리 가는 것만 야유회라고 생각한다.

식사 도중 송 대표를 비롯한 전 직원이 막걸리로 건배를 했다. 분위기는 더욱 무르 익어갔다. 안양천의 물 흐르는 소리와 꽃향기, 사람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모두가 작은 행복이 아니라 큰 행복이었다.

11시 30분에 시작된 도시락 단합대회는 1시간여만인 12시 30분에 끝이 났다. 그리고, 2차 단합대회(?)가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임직원들은 삼삼오오 벚꽃 터널 아래를 걸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사무실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는 듯싶었다.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에 하얀 꽃 이파리가 눈처럼 쏟아졌다. 필자에게도 꽃의 아름다움이 다가왔다.

SE 이엑스티 임직원들에게는 4월이 결코 잔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