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마 같은 더위인 듯 싶더니 어느새 가을이라니..."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둥지를 틀었다. 인간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자연의 섭리(攝理)는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고 했던가. 주말을 맞아 서점을 기웃거리다보니 온통 조정래 선생의 신작 소설 <정글만리>가 눈길을 끌었다. 무엇이 그토록 독자들의 눈을 집중시키고 있을까. 소설의 내용은 한국·중국·일본 등 각국 비즈니스맨들의 생존 전쟁을 그리고 있었다.

먹히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과 먹으려는 사람의 숨 가쁜 경쟁은 비즈니스를 넘어 인간의 삶 그 자체였다. 다윈은 일찍이 종의 기원에서 "생존경쟁은 모든 생물이 높은 비율로 증식하는 경향에 따라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결과다"고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은 불가피한 선택이다'는 것이다.

소설 <정글만리>는 이러한 치열한 생존의 싸움에서 벌어진 스토리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 중에서 일본인들의 집단 성(性) 스캔들 문제가 눈길을 끌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일본인 300여명 집단 매춘 검거"

중국의 조간신문에 대서특필된 기사 제목이다. 중국인들에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일본이 미운데 얼마나 통쾌한 뉴스인가. 신문은 당연하고 인터넷 세계는 더욱 격렬한 분노와 증오가 불타올랐다.

"거기는 이미 훨훨 타오르는 불바다였다. 전국 2천여 개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들이 불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날이면 날마다 불어나고 있는 중국의 네티즌들은 6억에 육박하고 있다. 그 거대한 바다는 이름이 감추어진 익명성의 바다였다....거칠 것 없는 분노와 증오로 불타고 있는 그 세상은 피 냄새 진동하는 언어들이 난무하는 잔혹한 정글이었다."

이러한 상황과 더불어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된다'는 소설 속 주인공의 말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컸다. 익명의 바다에는 사실과 다른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분좋은 추석 명절 후에도 신문과 방송이 온통 한 유명인사의 '혼외 아들 의혹 문제'로 들끓고 있다. SNS 세계는 더욱 신이 나서 요동을 친다. 국민들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 나라가 두 쪽으로 갈린 형국이다.

이 시점에서 중앙일보 이철호 논설위원이 지난 16일자 칼럼을 통해 균형감 있는 지적을 했기에 옮겨본다.

"어느 땐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의견과 사실을 뒤섞어버리는 경우가 흔해졌다. 정치적 프리즘을 통해 모든 사안을 집단논리와 파워게임으로 굴절시킨다. 이런 음모론이 판치면 우리 사회는 후퇴한다. 오직 사실만을 쫓아야 한다."

덧붙여서 이철호 논설위원은 "여론이 사실을 몰지 말고 사실이 여론을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사실이 정확하게 밝혀질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도 미덕일 듯싶다. 대한민국이 정글(jungle)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