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대만의 국교가 끊어진 지도 올해로 벌써 20년이 지나갑니다. 우리 정부가 1992년 중국과의 수교를 선택하면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 아래 대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국교가 단절된 이듬해 다시 민간 차원의 대표부 복원에 합의가 이뤄져 지금껏 이어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관계가 소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는 동안 대만은 어느새 ‘잊혀진 이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하나의 사례를 금융교류 측면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교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은행은 물론 증권이나 보험 분야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주고받는 연간 교역액이 300억 달러에 이름으로써 서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역 상대국으로서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고 하면서도 금융기관의 뒷받침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국과 대만 사이의 교류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기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서, 서울에 대만 은행들의 지점이 설치되지 않았고 타이베이에 한국 은행들의 지점이 설치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무역 규모에서뿐만 아니라 다시 직항 노선이 뚫려 연간 65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오가고 있으며, 대학을 비롯한 학술·문화단체나 로타리·라이온스클럽,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교류가 그런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너무 동떨어진 현상입니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금융기관들의 숫자와 비교해 보아도 그 차이는 너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은행만 해도 베이징뿐만 아니라 상하이, 청두, 옌타이, 선양, 칭다오, 하얼빈, 광저우, 장자강 등에 이르기까지 줄잡아 60개 안팎의 지점이나 사무소, 현지법인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대부업체까지 진출함으로써 중국이 금융업에 있어서도 세계 최대 블루오션의 무대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만 해도 국민은행이 베이징에 현지법인과 지점을 동시에 열었고,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은 각각 광둥성 심천분행과 후베이성 우한분행을 열고 영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경쟁대열에는 지방은행들도 속속 뛰어들고 있습니다. 부산은행이 중국 금융당국으로부터 칭다오 지점 설립에 대한 최종 인가를 취득한 상태이며 대구은행도 상하이지점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중국계 은행들의 한국 진출도 활발합니다. 올 들어 지난 2월 중국농업은행이 한국에 처음 진출하면서 설치한 서울지점을 포함해 중국은행, 공상은행, 건설은행, 교통은행 등 중국의 5대 은행이 모두 10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울은 물론 부산이나 대구, 그리고 중국 교포들이 몰려 거주하는 안산, 구로동, 대림동 지역에까지 점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중국계 은행들의 국내 외화대출 시장에서의 영업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그러한 결과입니다. 유로존 재정위기의 여파로 유럽계 은행들의 영업이 위축되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양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중국인민은행의 통화스와프 계약으로 서로의 수출입 대금 결제가 조만간 미국 달러화 대신에 원화와 위안화로 이뤄지게 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는 것을 보면 ‘차이나 머니’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이러한 중국과의 교류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오히려 더 발전시켜 나갈 필요도 없지 않습니다. 연간 왕래 인원이 800만명, 교역규모가 2,200억 달러에 이르는 만큼 금융교류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국내 은행들끼리 중국에서 출혈경쟁을 벌이게 된다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현지 시장을 공략할 여지는 아직도 얼마든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대만과의 관계입니다. 중국과의 교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되 대만과의 관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대만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겠습니다만,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만과의 교류를 확대할 만한 방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실례를 들자면, 미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태국, 싱가포르 등에는 대만의 정부지주은행인 타이완(台灣)은행을 비롯해 자오펑(兆豊), 궈타이(國泰), 푸방(富邦), 쫑신(中信)은행들의 점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국교에 관계없이 경제 거래는 그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만과 국교를 유지하다가 10여년 전에 관계가 단절된 남아공의 경우에도 요하네스버그에서는 대만 은행들이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대만의 경우는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단교 이전에도 은행 지점들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한때 은행 교류의 필요성이 논의되다가 단교조치로 인해 그냥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국내 은행들이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까지 점포를 설치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직 대만을 기피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최근에는 국제 제재가 풀어진 미얀마에도 서로 경쟁적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마당입니다.

정치적인 영역까지 논의를 확대하면 더욱 복잡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남한과 수교를 이루고도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충분히 감안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은행 지점 설치에서조차 언제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일까요. 지점 설치에 앞서 정부 간에 금융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돼야 한다는 점에서 은행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국과의 국교 수립 20년을 지내면서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적지는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서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지레 포기한 것은 없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새 정부에 주어진 과제이기도 합니다. 조만간 타이베이 시내에서도 우리 은행들의 간판을 구경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출처 : 자유칼럼그룹(http://www.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