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을 앞두고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수뇌부까지 나서서 비난하던 ‘더러운 정치’가 다른 한쪽에서는 ‘적법한 직무수행’으로 평가받는가 하면, 현 이명박 정부와 지난 노무현 정부의 책임 공방까지 이어지는 중입니다. 청와대의 ‘뒤집어씌우기’라는 반격에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물타기’라며 되받아치는 모습입니다.

민간인 사찰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인권침해 범죄입니다. 불행하게도, 거기에 해당하는 사례들이 은밀히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와 사립학교 이사장, 기업체 장학재단, 병원노조, 연예인, 언론인 등이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비슷한 사안들이 불거질 때마다 재발방지를 약속해 왔는데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실감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서로 상대방을 구석으로 몰아세우고 있으니, 누가 옳고 그른지를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둘 다 잘못이 있다면, 어느 쪽의 잘못이 더 큰지도 가려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이번 선거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터인데 투표일 직전까지 진상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래저래 유권자들은 엉거주춤한 심정으로 한 표를 던질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정치권의 치열한 공방전과는 별도로 특검 얘기가 불거져 나온 것은 그런 때문입니다. 화살이 검찰 쪽으로 겨눠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당 선거대책본부에서도 “2년 전 검찰 수사가 미흡했고, 검찰에 신뢰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특검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논평이 발표됐습니다. 야당에서는 특검 대신에 특별수사본부 얘기가 나오기도 합니다만, 검찰에 대한 불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2010년 민간인 사찰 사실이 처음 폭로되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관련자 몇 명을 구속했지만 어정쩡한 부실수사였다는 점이 새삼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이 USB에 보관하던 2,600여 건의 문건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청와대는 이들 문건 가운데 80%가 과거 정권에서 저질러진 사찰 기록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렇다고 검찰의 부실수사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검찰은 당시 수사에서 청와대 하명사건 목록 25건을 확보하고도 문제로 떠올랐던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와 남경필 의원에 대한 경우만 처리하고 수사결과 발표나 재판에서 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풍문이나 동향을 수집하는 정도였기에 모두 내사 종결했다는 게 검찰의 해명이지만, 그 대상자들이 대체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또는 과거 정권 인사들이란 점에서 해명에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동안 정치적, 또는 재벌관련 사건에서 검찰이 권력층의 눈치를 살피며 미적지근하게 처리했던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비리의 단서를 잡고도 수사의 칼날이 도중에 무뎌진 경우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권력에 길들여진 탓이라는 것이 검찰 안팎에서 들려오는 자성의 목소리입니다. 검찰이 내세우는 ‘성역 없는 수사’가 곧잘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 마피아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로 국민적 신망을 모았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가 새삼 떠오릅니다. 이탈리아 검찰은 1992년부터 두 해 동안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를 포함해 모두 3,000명 가까이 체포하거나 구속했는데, 피에트로 검사의 역할이 컸습니다. 40년간 지속되던 기민당과 사회당의 연정이 무너진 것도 그 결과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마니풀리테(깨끗한 손)’ 운동이 끝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검찰의 역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임에 틀림없습니다.

지난 1976년 일본에서 록히드 스캔들과 관련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수상을 구속했던 도쿄지검 특수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쿄지검은 1988년 리쿠르트 사건과 1992년의 사가와큐빈(佐川急便) 등의 정경유착 사건에서도 유력 정치인들을 엄정히 처리한 것으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느 전직 검찰총장이 총장 후보자 시절 일본 검찰을 ‘쪼다’라고 평가절하하고 “한국 검찰이 세계 최고”라고 자평했다지만,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평가라고 여겨집니다.

검찰의 역할은 사건의 진실을 가려내는 데 있습니다. 법을 어긴 사람에 대해 그에 따른 처벌을 내림으로써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임무가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 기업인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처벌하면 됩니다. 하지만 검찰이 본연의 직무를 소홀히 한다면 사회 전체가 곪아터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검찰의 존재 이유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검찰의 권한은 제도적으로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이 다시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재수사의 칼날을 빼들었습니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모든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하겠다”며 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이탈리아 피에트로 검사나 다나카를 구속했던 도쿄지검 검사들의 경우를 떠올리며 수사 결과를 유심히 지켜볼 것입니다. 적어도 검찰의 미진한 수사로 ‘더러운 정치’가 재연되고 국민들의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가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출처 : 자유칼럼그룹(http://www.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