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이 차가워도 나고야(名古屋)의 봄은 따스했다. 뒷골목 정원마다 피어있는 사잔카(山茶花: 애기동백)의 빨간 미소가 떠나는 겨울을 알리고 있었다. 이 '사잔카'는 늦가을에서부터 겨울에 걸친 추운 시기에 꽃을 피운다. 예년에 비해 늦게까지 겨울을 붙들고 있는 셈이다.

야생 '사잔카'는 부분적으로 희미한 복숭아 색을 섞은 흰색인데 비해, 재배되는 원예 품종의 색깔은 빨강 · 하양 · 핑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꽃의 중국식 한자 표기는 산다화(山茶花)다. '사잔카'의 이름은 '산다화(山茶花)'의 본래 이름인 '산사카(山茶花)'에서 온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잔카의 야토(宿)'라는 후쿠오카 출신 가수 '오오카와 에이사쿠(大川榮策, 1948- )'의 노래도 유명하다."붉게 피어도 겨울의 꽃/ 피어도 쓸쓸한 '사잔카' 피는 여관/ 봄은 언제나 오려나/ 사잔카 피는 여관(宿)"

필자는 거리에 피어있는 빨간 '사잔카'를 보면서 나고야의 봄을 만끽했다. 빌딩 옆의 백매(白梅)는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고, 보슬비는 계절의 사신(使臣)인 듯 살포시 내렸다. 불현듯 "흐드러진 꽃가지에 봄비 흩뿌릴 제, 그리움 일렁이는 봄날은 잔인하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詩句)가 떠올랐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보슬비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듯이 우산을 쓰고 걸었다. 봄의 낭만을 즐기기에는 일본의 환경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 나고야 지역은 방사능에 대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방사능은 '그 누구도 호언(豪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때마침 그림 전시장에서 만난 회사원 '시로자키 마사히로(白崎正博, 57)' 씨는 원자력발전소 문제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했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발전소(14기)를 가지고 있는 후쿠이(福井) 출신이다"면서 목청을 높였다.

"저의 고향은 바다에 인접해 있어서 해안이 아름답고 공기가 맑은 곳입니다. 자연환경이 아주 좋은 곳이죠. 그런데, '일본 최다의 원자력 발전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요즈음은 가장 불안한 요소입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감이 고조된 것이다. 아사히(朝日)신문도 사설(25일자)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서울에서 모인 핵(核) 정상회의- '원자력 사고 방지'라고 하는 안전대책과 '핵 테러 방지'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 정치적 결의를 표명하기를 부탁한다. 더불어, 후쿠시마(福島)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 정부의 정책과는 달리 일반 국민들은 불안 해 한다.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도,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건설회사도, 안전이라는 문제에 대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보슬비를 맞으며 나고야 거리를 걸었다. 나고야에서 우리보다 빠른 봄을 맞은 것이다. 보슬비는 그치지 않고 밤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