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서울 거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멀리 산에서 흘러내려온 듯 울긋불긋 가로수의 가을 단풍이 눈길을 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가로수를 쳐다본다. 특히, 은행나무가 많은 여의도 거리는 노란색 일색이다. 때마침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마치 봄 나비가 나는 듯 진풍경이다. 산 속이 아니라도 좋다. 빌딩 숲 사이의 보도 위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Apollinaire, 1880-1918)는 '가을'이라는 시(詩)에서 '가을이 여름을 죽였다'고 했다.

"오! 가을, 가을은 여름을 죽였도다."
 푹푹 찌던 여름날을 생각하면 여름이 죽기를 잘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 붓던 폭우는 얼마나 얄미웠던가. 모두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제법 냉기를 느끼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가을을 위협하고 있다. 가을은 또 하나의 나이테를 그으며 저 만치 달아날 것이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찬바람에 줄행랑이다.
 가을의 끝자락에 서울에서 큰 행사가 열렸다. 세계의 정상들이 서울하늘 아래서 얼굴을 맞대고 세계 경제발전을 위해 중지를 모은 것이다. 기업들은 자사 PR 광고에서 '대한민국의 품격이 높아졌다'고 응원했다. 세계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선진 20개국 정상들이 서울에 모였으니 그럴 만한 일이다.

 G20 정상회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이 모임은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오일쇼크 이후 미국 · 일본 · 영국 · 프랑스 · 독일 5개국 선진 국가들이 상호 경제정책 협력을 목적으로 G5를 구성했다. 그 후 이탈리아(1975)와 캐나다(1976)가 합류하여 G7이 되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시장 안정 및 전 세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국제협력체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99년 주요 선진국 및 신흥국의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국제사회의 경제, 금융 이슈를 폭넓게 논의하는 'G20 재무장관회의'를 출범시켰다. G20 재무장관회의는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신흥국 공히 긴밀한 정책공조가 절실하게 되었다. 이들의 모임을 더 큰 차원으로 높이자는 목소리가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장관급 회의'로 운영되던 G20 회의를 '정상급 회의'로 격상했다. 2010년의 회의 개최지가 한국으로 확정되면서 한국의 국격(國格)이 한 차원 높아졌다는 분석이 있었고, 지난 11일과 12일 역사적인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에 세계의 이목이 모아졌다.

 회의가 열리는 동안 서울 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평온했다. 때때로 회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회도 있었지만, 가을바람에 묻혀 버렸다. 도심의 차량흐름도 무척 빨랐다. 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등(燈) 축제에 관광객들이 운집했다. 조롱조롱 등불마다 그 나라의 문화가 매달려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서울의 가을이다.
 서울의 아름다움만큼 '서울 선언'도 의미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폐막 후 가진 내외신 기자 회견에서 '일단 환율전쟁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세계 경제의 화두인 환율 공방이 잠재워진 셈이다.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나온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는 환율해법에 대한 날짜를 박았다. 내년 상반기까지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평가한다"면서, "다음 정상회의(내년 11월 프랑스 칸)까지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이 결정됐기 때문에 어쩌면 굉장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통령은 또 "공동의 위기에 처한 여러 국가에 탄력대출제를 동시에 제공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며 "IMF가 위기해결만이 아니라 위기예방까지 역할을 확대하는 큰 변화"라고 밝혔다.  이번 회의는 5번째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니 다행스럽다. 세계 경제와 맞물린 우리 경제가 좋아지면 서울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