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기차를 타고 도쿄 역에 내리면 아주 낯익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쿄 역 건물이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외관이 우리의 서울역과 너무나 닮았다. 그래서 설계자가 동일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실제는 다르다. 도쿄 역은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 시대를 풍미하던 일본공과대학(도쿄대 전신) 1회 졸업생인 유명 건축가 다스노 긴코(辰野金吾, 1854-1919)가 설계했고, 서울역은 그의 제자인 츠카모토 야스시(塚本靖, 1869-1937)가 설계했다.

도쿄 역은 1908년에 착공하여 1914년에 완공되었고, 서울역은 일제 강점기인 1922년에 착공하여 1925년에 준공되었다. 나이로 보면 도쿄 역이 열 살쯤 위인 셈이다. 다스노의 제자인 츠카모토가 스승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서 일까?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다스노식’ 건축물이 태어났으니 말이다. 실제로 츠카모토는 ’다스노식’ 건축물을 이어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유럽에서 서양건축사를 공부한 츠카모토는 미술과 공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우리의 서울역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도쿄 역은 원래 서쪽으로는 신바시(新橋), 동쪽으로는 우에노 역(上野驛)으로 각각 나뉘어 있었다. 이것을 하나로 묶어 도쿄의 관문을 만들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중앙정거장’이라고 불리었던 이 역을 어디에 만들 것인가의 문제도 논란거리였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에도시대부터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왔던 니혼바시(日本橋)나 긴자(銀座) 근처로 하는 것이 타당했다. 그러나, 수도 상징의 성격을 중시하여 황거(皇居) 앞이 선택되었다고 한다. 기차 역사이지만 단순한 교통·운수의 거점이 아닌 격식을 지님은 물론, 황거를 포함한 주변경관과의 조화가 고려되었다는 것이다.

’다스노 식’이라고 불리는 도쿄 역은 길이 320m, 3층의 거대한 건조물이었다. 다스노는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 역사를 참고로 하여 설계했다고 한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은 대체로 빨간 벽돌의 벽에 하얀색 화강암으로 띠를 두르고 있는 특징이 있다. 서울역의 경우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졌고, 외장재는 빨간 벽돌과 하얀색의 화강암이다.
 일본의 도쿄 역은 전쟁 때 공습을 받아 3층 부분이 없어지고 양 사이드의 돔도 없어졌다. 그래서 그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스노가 설계했던 원래 모습의 역사 탄생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스노 긴코의 또 다른 작품은 현재 화폐금융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한국은행 본점건물이다. 이 건물은 도쿄 역 보다 앞선 1907년 제일은행 경성지점으로 착공되어,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되었다. 르네상스 양식의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졌고, 외장재는 모두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이 건물과 같은 형태로 지어진 것이 일본의 니혼바시(日本橋)에 있는 일본은행 본점이다.

일본의 유명 설계회사 대표인 후쿠나가 히로시(福永 博, 63세)씨는 건축가의 사명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건물 고유의 디자인은 물론 주변의 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도시 경관이 융합·조화하고, 건물과 거리가 나란히 향상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건축물은 개인 소유인 동시에 사회의 구조적인 재산이므로 장기간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도시는 왜 아름다울까?’의 저자인 사노 타카히코(佐野 敬彦, 73세)씨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디자인은 아름다운 도시환경의 좋은 교과서다. 이러한 세계적인 환경디자인 연구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면서 환경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의 말처럼 건축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느껴지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루아침이 값이 오르는 투기적인 가치가 아닌 우리 모두가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환경미화적인 역사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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