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릉 쾅쾅’ 파키스탄 고속도로의 전 구간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던 어느 날 새벽 6시.  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갈라지고 바윗돌 깨지는 소리가 파키스탄 사람들의 새벽잠을 깨웠다. 현장 요원들은 모두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땀 흘리며 닦아놓았던 도로가 보이질 않았다. 100m나 되는 깎아지른 절벽이 도끼로 잘라낸 듯 뚝 떨어져 도로를 덮친 것이다. 말 그대로 슬라이딩(sliding)이다. 현장 직원들은 대자연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작업 중에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새벽에 일어난 재앙(?)에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7km나 되는 산악구간인 파키스탄 모터웨이 4공구 솔트레인지(Salt Range) 현장에서 수차례 일어난 사고다. 이 구간은 100m가 넘는 석회석 절벽을 끼고 모터웨이가 지나간다. 이곳을 현장에서는 슬라이딩 구간이라고 부른다. 길을 닦기만 하면 절벽이 시루떡처럼 겹겹이 층을 지며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제1의 지질학자와 감리단이 인정하는 세계적인 지질학자, 필자 회사의 기술자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필자 회사의 기술진들은 포기하지 않고 해결 방안 찾기에 몰두했다.

대규모 슬라이딩 발생원인은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슬라이딩의 원인은 다름 아닌 물이라는 것을 찾아 낸 것이다. 절리가 많은 석회암석층으로 형성된 평탄한 산의 정상부로부터 흐르는 지표수와 지하수가 석회암층 하부에 형성되어 있는 조악한 붕석층을 약화시키고, 붕석층 하부의 진동층을 액상화시킴으로서 지반의 지지력을 잃게 했다. 이로 인해 붕석층에서 슬라이딩이 발생했고, 이어서 상부 암석층까지 슬라이딩의 범위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현장 기술진들은 발주처 측을 찾아가 현장 여건에 적합한 신공법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공법이라고 해도 컨설턴트와 발주처는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성과가 없어 고민하던 발주처로선 현장에서 제시한 새로운 공법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 기술진들은 지표수와 지하수의 원활한 배수에 주안점을 두고 도로 우측 절취부의 붕적층과 혈암(shale)층의 경계부위에 콘크리트 유공관을 설치했다. 그리고 도로 횡단면 좌우측에 각각 유공관을 매설하고, 측구와 도로 하부에도 배수관을 시공했다.

또한 산 정상으로부터 흐르는 지표수 처리를 위해 2개소에 대규모 절토 법면 도수로를 만들었고, 도로를 횡단하는 물의 배수를 위해서 콘크리트 박스 암거(Concrete Box culvert) 3개소, 철근 콘크리트 파이프 2개소를 시공했다. 이밖에도 추가적인 여러 공법이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물 처리를 기본으로 한 공법은 성공을 거두었다. 도로 포장을 완성한 후 여러 각도로 결과 측정을 했으나 지반의 움직임은 없었다. 준공 후 10년이 지난 오늘도 이 도로는 아무런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제시했던 공법이 완벽했던 것이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 높은 절토 구간이라서 장비 이동이 어려웠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당초 설계 시 지질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리고 석회암 절취 후 그 하부에 있는 붕적층이 다량의 지하수를 함유하고 있고, 지하수 배수에 따른 부분적인 슬라이딩이 발생하였을 때 즉시 지질조사(boring test)를 시행하지 못했던 것도 문제점이었다. 인간이 대자연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지만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건설인의 사명이다.

필자는 지질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솔트레인지(Salt Range) 구간을 필히 답사 해 보기를 권한다. 고생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지층 표본이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