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을 가다 보면 인천대교 공사현장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필자가 건설 인이기에 본능적으로 눈이 가는 탓도 있지만,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세계에서 6번째로 긴 다리가 될 인천대교는 길이가 18.24km나 된다. 인천시는 다리 미관을 수려하게 하여 미국의 금문교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를 만든다고 한다. 서울의 한강에도 교량이 많이 있으나, 다리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각기 다르듯이 공사 방법도 다양하다.

 인천대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작은 교량이지만, 파키스탄의 젤룸(Jhelum)강 대교는 공법 측면에서 보면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대교는 고속도로 총연장 357km 구간의 중간지점인 183km에 위치하여 평야지대인 1,2공구와 산악지대인 3,4공구를 양분하는 젤롬(Jhelum)강에 위치해 있다. 폭 870m인 젤룸(Jhelum)강은 건기인 1,2월에는 자동차를 타고 건널 수 있을 만큼 물이 마르지만 우기인 7,8월에는 강이 범람할 정도로 수량이 많다. 

교량의 공법은 대체로 현장 여건을 감안해서 결정되는데, 어려운 여건일수록 결정권자의 판단이 대단히 중요하다. 젤룸(Jhelum)강 대교의 경우 처음에는 단순한 PC빔의 교량으로 설계했었으나 계약 후에 강의 범람에 대비하는 효율적 공법을 채택하도록 했다. 그것이 바로 ILM(Incremental Launchaing Method: 연속압출공법)이다. 

 이 공법은 한쪽 교대(橋臺, abutment) 뒤편에 구조물 제작 장을 만들어 정밀 제작한 철제 거푸집을 설치하고, 경간의 절반에 해당하는 25m 길이의 박스 세그먼트(Box Segment)를 제작·양생해서 포스트텐션(post tension) 방식으로 프리스트레스(prestress)를 실시한다. 그 다음 대형 유압장치를 사용해서 반대편 교대 쪽으로 압출한다. 이 과정을 7-10일 공정 주기로 반복하여 교량상부를 완성하는 시공방식이다. 이 공법은 재래식 PC빔 공법에서 볼 수 있는 신축 이음장치가 없고 비계와 동바리가 필요없는 첨단 교량공법이다. 

1960년 독일의 Leonhardt & Andra 사에 의해서 개발된 ILM공법은 PC빔 교량에 비해 10%정도의 추가 비용이 소요되고 장비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러나 공기예측이 가능하고 반복 작업 및 24시간 연속 작업을 할 수 있어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공법이다.

새로운 공법으로 속도를 내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이 교량은 배를 타고 건너던 현지인들에게는 모세의 기적과도 같았다. 공사 중인데도 불구하고 교량의 조기 통행요구가 봇물을 이루었다. 기존의 도로를 따라 강을 건너서 가는 것보다 3시간이나 단축되는 거리인 관계로, 현지인들은 공사 중에도 통행을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준공 전에 교량통행을 허용한다는 것은 공사 수행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를 가져오는 까닭에 거절했다.
 
특히, 안전상의 문제가 컸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지인과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준공 전까지 통행을 불허하도록 했다.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까지 어려움이 컸으나 결과적으로는 잘 한 조치였다. 책임자는 항상 원칙에 입각하여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아무튼 이 공사는 파키스탄 최초로 ILM공법을 실행했다는 점 외에도 설계·엔지니어링·시공 등 전 과정을 시공사 주관으로 시행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독일, 스위스, 파키스탄 등 국제적인 업체와 기술자들이 공동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파키스탄의 명물이 된 젤룸(Jhelum)강 대교는 일찍이 한국기업을 중심으로 다국적 기술자들의 피와 땀에 의해서 탄생되었던 것이다.

국내 건설 시장은 현재 대단히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국내 시장의 어려움만 토로하지 말고 국제화·현지화를 통해서 세계시장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 그것은 건설업체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숙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국적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서둘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