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최대 도시이자 산업의 중심지인 카라치(Karachi) 공항에 내리면 인구가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입국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마중하는 인파가 아니라 짐 운반을 거든다거나 택시 손님 등을 유치하기 위한 호객꾼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출근 시간의 만원 버스나 지하철도 이토록 붐비지는 않을 것이다. 공항 대합실에서는 짐은 커녕 맨몸으로 빠져 나가기도 어려울 만큼 대 혼잡을 이룬다. 이 나라의 인구가 많다는 것과 실업률이 높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1947년에 40만명이던 카라치의 인구가 1990년대에 900만명이 되었다. 이 도시의 인구는 매년 6%씩 증가했고 실업률은 25%에 달했다고 했다. 실제로 파키스탄의 인구는 1947년 독립 이후 2007년까지 4배 정도가 늘어 1억6400만명이라는 통계다. 인구의 대부분이 펀잡과 신드 지방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으니 대도시의 혼잡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키스탄 최초의 고속도로 건설공사는 요즘말로 ‘일자리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1992년 4월. 현지 신문에 인력 모집광고를 실었다.

<한국의 건설회사가 현장에서 일할 건설기술자. 중기운전자, 일반 기능 인력을 모집합니다. 해외건설 현장 경력자는 우대합니다>

광고가 나가자마자 파키스탄 건설 본부는 이른 아침부터 이력서를 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당일 접수한 사람이 1000명이었고, 신문광고가 한 번씩 나갈 때마다 5000여 명이 이력서를 부쳐왔다. 건설본부 사무실은 공사현장 사무실인지 우체국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낙엽처럼 쌓이는 우편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1992년 한 해에만 접수한 이력서가 10만여 통에 달했고, 공사가 피크에 이르던 1993년에는 20여만 통의 이력서가 접수되었다. 공사를 마치기까지(5년 7개월) 접수한 이력서가 40만 통이 넘었으니 1947년의 카라치 인구와 같은 숫자를 기록했다. 따라서 서류 심사를 위해 현장 직원들이 밤샘작업을 함은 물론, 서류전형 합격자에게 보내는 전보 비용도 만만치 않게 지불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필자 회사가 시행하는 고속도로 공사는 이 나라의 산업화에 기여함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이바지 한 것이다.

그러나 몰려드는 인력에 비해 우수한 기능공이 많지 않았다. 중기조작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하루에 고작 5~6명 뿐 이었다. 그나마 조작이 서툴러서 장비를 망가뜨리는 경우도 많았다. 5톤 트럭을 조작하던 현지인들이 15~25톤의 대형 중장비를 운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장의 문제점을 보고받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도록 지시 했다. 

파키스탄 군(軍)에 유능한 기능 인력이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정부를 통해서 군부대에 인력조달을 요청하라고 했다. 따라서 파키스탄 공병단에서 제대하는 인원 중에서 덤프트럭, 그레이더 등 중장비 운전 요원을 직접 선발했다. 최신 장비를 다루어본 경험이 있는 군인들이 민간인에 비해서 장비를 조작하는 기술이 우수했다. 

그러나 군대에서 갓 제대한 현지인을 관리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것도 생활습관, 문화, 종교,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 군에서 퇴역한 영관 장교를 인력관리 책임자로 채용했다. 인력관리 체계가 정립되자 건설현장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모두가 만족하는 작업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파키스탄은 영국의 식민 지배를 오랫동안 받은 까닭에 영어가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국어는 우르드(Urdu)어다. 이 나라는 국민들에게 우르드(Urdu)어를 통해서 일체감을 갖도록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파키스탄의 현지화(Localization) 전략은 무엇보다도 주효했다.

건설현장은 단순히 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의 집단이 아니다. 해외건설 현장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현지인의 종교나 언어, 역사 등 모든 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군이 유일한 안정 세력이며, 펀잡 인이 군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도 그 당시의 파키스탄의 정치 상황을 함축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