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재원과 우리나라의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길"

추풍령 고개 고속도로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1968년 2월. 건국 이래 최대의 역사(役事)인 경부고속도로건설이 시작되었다. 총 길이 428킬로미터의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고속도로인 것이다. 이 도로를 건설한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은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다. 숭실대 정대용 교수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라"라는 글을 통해서 "정주영 회장은 지프차를 타고 매일 전국 고속도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직원들에게 국가적 사명감을 심어주며 일을 독려하고 공사를 지휘·감독한 끝에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를 준공했다"고 했다. 정주영 회장은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냈다. 무슨 일이나 리더의 희생이 없이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 일반인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할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필자의 승부수에 의해 전격적으로 계약이 이루어진 파키스탄 최초의 고속도로공사는 역사적인 첫 삽을 뜨게 되었다. 1992년 1월 11일, 파키스탄 제2의 도시인 라호르에서 모터웨이 건설을 기념하는 기념비 제막식이 거행되었고, 3개월 후인 4월 6일로 기공식 날짜가 잡혔다.

남의 나라에서 건설되는 고속도로 공사이지만, 필자의 경우도 남다른 감회가 깊었다. 자칫하면 날려 버릴 수 있었던 값진 결과이기도 했지만. 이 나라 최초의 고속도로 공사를 한국 업체인 대우가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기공식 행사는 나와즈 샤리프 수상이 국회의원으로 첫 출발했던 ’펀잡주’의 제 2공구에서 거행하기로 했다. 대우 그룹의 경영진은 물론 파키스탄 정부의 수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널은 들판에 5개의 강이 흐르는 ’펀잡주’는 파키스탄 경제력의 70%가 집중되어 있는 농·공 산업의 중심지다. ’펀잡’은 현지어로 ’5개의 강’을 의미한다고 했다. 기공식 장소는 과수원으로 정해져 과실수를 자르고 도저로 밀고 닦아 폭 60미터, 길이 80킬로미터의 도로를 만들었다. 3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현장요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강행하여 정주영회장의 말처럼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닦았다.

1992년 4월 6일. 마침내 역사적인 기공식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파키스탄은 온통 축제의 분위기였다. 정부에 대해 반대만 일삼던 야당도 모터웨이의 성공적인 건설을 축하해 주었다. 기공식장의 찜통더위는 목욕탕의 사우나 실을 방불케 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 몸에 땀이 주르르 흘렀던 것이다.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더위를 부추겼다. 한국의 KBS도 기공식 행사를 위성으로 중계했다.

새롭게 단장한 20대의 덤프트럭이 상체를 번쩍 들고 샤리프 수상의 사열을 기다리는 장면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샤리프 수상이 직접 운전한 도저가 지나가자 사열장의 기수들이 일제히 깃발을 내리듯 덤프트럭들은 일제히 거대한 상체를 내리고 수상이 모는 도저를 따라 200여 미터를 행진했다. 이와 같은 200대의 중장비 행진은 어느 기공식 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진기한 풍경이었으며, 이 날 행사를 압권하는 최고의 이벤트였다.
나와즈 샤리프 수상은 인사말은 통해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역사적인 고속도로 공사의 첫 삽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 고속도로를 통해 파키스탄이 중앙아시아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새로운 무역과 산업개발의 새 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면서, 온 국민을 향해 자랑스럽게 말했다.

실제로 샤리프 수상은 고속도로 공사를 조속히 건설하여 ECO(Economic Cooperation Organization: 중앙아시아 6개국 등 10개국 경제협력 공동체)의 타 회원국에 한 발 앞서 도로 운송체제를 갖춤으로써, 항구가 없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물동량 유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