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후쿠오카에 있는 후쿠오카 시티은행(현 서일본 시티은행)에 간적이 있다. 필자도 은행원인지라 남다른 관심이 있었지만, 서일본 시티은행의 특이한 건물 모양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빨간 색의 돌 외벽에서부터 예술적인 디자인감각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멀리 인도에서 가져온 미려한 돌로 은행 본점으로서의 중후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고 했다. 건축물도 도시 미관을 고려하여 예술적인 형태로 지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필자는 건물 입구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헨리 무어'의 조각상이 반갑게 맞이하였으며, 독일 신야수파의 거장이라고 하는 '안젤름 키퍼'의 작품이 커다란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 내부로 들어서자 미로, 모네, 간딘스키, 마크 로스크는 물론 피카소의 그림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유명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진기한 작품들이었다.
사람들은 은행이라고 하면 흔히 돈을 떠올린다. 그런데 서일본 시티은행은 예술품의 보고(寶庫)같은 생각을 들게 했다. 문화적으로 성숙한 은행이자 앞서가는 기업이었다. 이 은행의 합병(M&A) 과정에서 미술 작품들의 재산적 가치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후쿠오카 시티은행은 미술품 재테크에서 성공을 한 셈이다.
아무튼, 오늘날 미술품이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투자'하면 주식과 부동산을 떠올리지만 미술품도 새로운 투자수단이 된 것이다. 선진국의 전유물이라고 하던 아트 펀드가 우리나라의 각 은행에서 시행한지 오래되었고, 이미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중의 각 은행들이 PB(Private Banking) 영업에 아트뱅킹을 도입하여 VIP영업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유명 경매회사들도 미술품 투자의 활성화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맹목적으로 미술품에 투자하는 것은 금물이다. 투자의 목적이 전혀 배제될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딱히 들어맞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집의 거실에 어떤 그림이 걸려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폴 후셀'은 <계급론>에서 “거실에 샤갈의 오리지널 판화가 걸려 있으면 상류층에 속한다. 복제품이 걸려 있으면 중하류 층이고, 책장에 책이 가득 차 있으면 중류층이다. 탁자 위에 ‘뉴욕 타임즈'가 놓여 있으면 중상층이고, 대중 잡지가 놓여 있으면 중하류 층에 속한다"고 했다. ‘거실의 그림 한 점이 그 사람의 수준을 말해 준다'는 뜻이다. 회사의 경우도 그렇다. 외국 바이어들과의 대화중에 회의실에 걸려 있는 그림이 화제가 되어 협상을 훨씬 유연하게 이끌어 가는 경우도 많다.
어떤 집은 최고급 가구와 진기한 장식품이 가득하지만 정작 그림이 한 점이라도 없으면 왠지 황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돈이 많은 부자이지만 삶의 멋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치장의 의미로 그림이나 책을 꽂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