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경남기업이 태국의 중앙방송국 공사를 수주하여 해외건설의 물꼬를 튼 이래로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공사 금액이 2000억 달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계산이 잘 안 되는 엄청난 규모다. 건설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점철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필자도 대우가 경남기업을 인수한 후 중동 본부장의 자격으로 해외생활을 한 적이 있다. 1984년 12월부터 1986년 6월까지 1년 반 동안 사막의 모래바람과 싸우면서 살았던 것이다.

건설인은 대체로 산간벽지나 사막의 오지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거친 삶을 산다. 업종의 특성상 옥외적이고 분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성(人性) 자체가 거칠다는 것이 아니다. 현장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주변 환경이 거칠다는 것이다. 산허리를 뚫는 터널현장에서는 흙먼지와 싸워야 하고, 강이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교량 현장에서는 거센 바람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멀리 중동의 사막에서는 뜨거운 모래바람과 싸워야 한다.
요즈음도 우리는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중동에서의 뜨거운 모래바람은 중국의 황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숙소의 창문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고운(?) 먼지가 방바닥에 수북이 쌓이는 것은 차치하고, 벽에 걸어둔 푸른색의 작업복까지 하얗게 덧칠이 되어 몇 차례나 털어내고 입어야 하는 현장 여건은 말로서는 다 표현 할 수 없는 악조건이다. 어디 이 뿐이랴. 밥이나 반찬에서도 서걱서걱 모래 씹히는 소리가 난다. 건설인은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바람막이 건설인들이 나라의 경제위기를 몸으로 막아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상공부 차관보와 경제 제2수석비서관을 지낸 오원철 씨는 ‘한국형 경제건설’이라는 책에서 “1973년 10월 시작된 제1차 오일쇼크로 우리나라는 제2차 경제위기를 맞게 됐다. 이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월남에서 경험을 쌓은 남성인력이 중동에 진출, 그 진가를 발휘하여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고 했다. 한국형 경제건설은 이렇게 닻을 올린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해외공사 중에서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파키스탄 고속도로에 얽힌 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어느 회사나 개인을 치켜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이 공사의 수주과정과 시공에 관한 경험을 소개함으로써 여러 회사들의 해외공사 수주에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파키스탄 정부는 357킬로미터의 파키스탄 고속도로(Motor Way) 공사를 제한입찰로 하기로 하고, 한국·영국·이태리·중국·터키 등 5개 업체를 초청했다. 그 때가 1991년 11월 1일이었다. 입찰 마감일은 2주 후인 11월 14일이었고, 파이낸싱(금융조달) 40%라는 조건까지 붙였다. 시간적으로도 긴박했지만, 자금조달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196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유브칸 대통령이 집권하던 파키스탄은 아시아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1967년에는 우리나라의 정부에서 파키스탄의 경제개발 정책을 배우기 위해서 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불과 20여년 사이에 두 나라의 경제적 위상이 뒤바뀌기는 했지만, 파키스탄의 나와즈 샤리프 수상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모델로 하여 경제를 부흥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파키스탄 최초의 이 고속도로는 그러한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이었다.

아무튼, 파키스탄의 40% 재원조달 조건이 붙자 중국, 터키 등의 업체는 일찌감치 손을 들고 입찰에서 멀어져 갔고 최종적으로 이태리의 아스탈디와 대우건설로 입찰 범위가 좁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