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한국가정법률 상담소 인천지부 법률구조위원
前 인천지방법원 협의이혼 숙려기간제도 상담위원

- 한 부동산, 네 사람 이야기 -

1. 2007. 2. 1. 계약금만으로 집을 산 사람, 오매순
나 오매순. 이번에 학부형이 되는 결혼 10년차 주부이다. 시댁에서 연락이 왔다. 시골 땅이 수용되어 보상금을 조금 받게 되었는데 5000만원 정도 보태 줄 테니 손주 학교 들어가기 전에 집장만 하라고.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드디어 올해 내 집 마련을 하는구나. 아들 새학기 시작하는 3월 이전에 이사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평수는 작더라도 아들 학교·학원 다니기 좋은 곳으로 알아봐야겠다. 며칠을 돌아 봐도 매물도 많지가 않고, 요즘 뜨는 동네라 그런지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면 호가가 또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드르르릉’ 핸드폰 진동이 울리고 ‘여보세요, 사모님 여기 땡땡부동산입니다. 사모님이 찾던 물건이 나왔네요. 오늘 언제 시간 되시나요’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보니 매매가 1억2천만원. 지금 사는 곳 전세보증금 6천만원에, 시댁 보상금 5천만원, 그리고 모아둔 현금 1천만원을 탈탈 털면 딱 맞은 금액이다. 그래 사자. ‘사모님, 그런데 이게 급매물이라 잔금을 좀 빨리 줄 수 없을까요’ 땡땡 부동산에서 말하기에  ‘어차피 지금 사는 곳 전세계약이 이번 2월 말까지라 전세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내려면 한 달 여유는 줘야 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일단 사모님이 등기를 가져가시고, 한 달 동안 현재 집주인이 보증금 6000만원에 사모님 집을 임차해서 사는 것으로. 그리구 지금 있는 5000만원 근저당권도 한달 뒤 이사 올 때 말소하죠 뭐. 대신 계약금만 내고 등기 이전하시고 잔금은 한달 뒤 이사 올 때 다 치르는 셈이에요. 사모님은 손해 볼 거 없잖아요’ 듣고 있으니 뭔가 복잡한 것 같긴 하지만, 1억2천만원 집을 사면서 1천만원으로 등기를 먼저 넘겨 준다는데 싫다고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 2007. 2. 1. 드디어 남편 명의의 진짜 우리집이 생겼다.
2. 2007. 2. 1. 경매보다 급매를 선택한 사람, 진매동
나 진매동. 형님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수출 회사에서 영업이사로 일하고 있다. 영업도 일이지만, 회사 자금 확보를 위한 은행 대출 때마다 보증 서는 것이 일이다. 10년간 형님이 주는 월급으로 먹고 살고 아이들 교육을 시켰으니 싫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요즘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항상 어렵다 어렵다 했었고 언제 한 번 경기 좋았던 적이 있었냐마는, 이번엔 좀 다르다. 환율 하락으로 달러로 계약하는 수출 단가가 턱없이 낮아졌고, 폭등하는 원자재가나 인건비로는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가 없어 적자 누적이 한계점에 다다른 상태이다. 아무래도 이번달을 넘기지 못하고 당좌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면 그 많은 액수의 은행 대출 보증채무는 어떻게 하나. 가진 재산이라고는 살고 있는 아파트 하나인데, 분명 경매가 들어오겠지. 아파트 명의를 처 명의로 바꿔 놓을까. 아니야. 어차피 5000만원 근저당권도 설정되어 있고, 이자 부담도 있는데 그냥 팔아버리고 조용한 곳에 전셋집이나 얻어서 살아야겠다. ... 땡땡 부동산 수완이 좋긴 좋다. 급매물로 내놓았더니 하루 만에 매수인을 찾아 주고 등기까지 바로 처리한단다. 일단 1천만원 현금은 손에 쥐었고, 한 달 뒤에 6천만원을 받으면 그 돈으로 전셋집을 구해야겠다.  
3. 2007. 3. 2. 근저당권 덕에 채권 변제받는 사람, 백대여 
나 백대여. 건실한 중소기업에서 은행 대출 한도를 초과한 자금이 필요할 때 은행보다 조금 높은 이율로 금전을 대여해 준다. 형과 함께 사업을 하는 진매동 이사는 3년동안 이 백대여의 우량고객인데, 요즘 들어 안하던 이자 연체를 하고, 회사 자금사정이 악화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그렇다면, 가만있을 수 없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이런 때 일수록 한 발 앞서 움직여 줘야지.
’진이사, 어떻게 된 거야. 요즘 이자도 깜빡깜빡 하고 말이야. 두 말 필요 없고, 그동안 나하고 의리 생각해서라도 근저당권 하나 설정 해 줘. 진이사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나도 진이사 정말 급할 때 다른데서 급전 해 와서 자금 대 주고 했잖아 기억하지? 신세 갚고 싶으면 근저당권 설정해 달라고. 등기비용은 내가 낼 테니까’ ... 그렇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놓기를 정말 잘했지. 5000만원 갚는다고 오라는데 가 줘야지. 진매동 이사 결국 집을 파는구나. 진이사, 꼭 다시 일어서야해.
4. 2007. 5. 1. 모두 취소라 말하는 자, 노란은행
나 노란은행. 기업고객 중 하나에 당좌부도 사고가 접수 처리되었다. 경매 등 채권 실행 절차에 들어가기 위해 연대보증인 주소지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니 당좌 부도 10일 전에 아파트를 처분했고 이사한 현 주소지는 알 수가 없다.
채무자들은, 사업 자금이 필요할 때 대출을 받아 분명 요긴하게 사용하고도 사업이 어려워지면 채무를 갚지 않으려고 재산을 빼돌리기 바쁘다. 경매해서 채권자들이 매각대금을 배당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부동산을 쏙 빼내간 얄미운 오매순, 같은 채권자 위치에 있으면서 혼자 우선변제받겠다고 근저당권을 성절한 음흉한 백대여, 기다리라. 매매계약, 근저당권설정계약을 모두 취소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해 주리라. 
 

이야기 속 법률 찾기
진매동씨와 같이 채무가 늘어나 현재 보유한 부동산을 다 팔아도 갚지 못할 정도의 채무초과상태에 이르렀다면 진매동씨의 유일한 부동산인 아파트에 관하여서는 모든 채권자의 채권 확보를 위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아파트는 더 이상 진매동씨 혼자만의 것이라거나 채권자 중 한 사람이 독점해도 좋은 재산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노란은행이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면, 백대여씨의 근저당권설정계약은 취소되고, 근저당권에 기하여 우선변제받은 5천만원은 모든 채권자들이 채권액에 비례하여 배당받을 수 있도록 반환될 것입니다. 오매순씨 역시, 부동산 매수에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1)매매대금을 전액 지급한 금융자료, 2)진매동씨와 인척관계나 이전에 어떠한 금전관계도 없었고 3)진매동씨가 채권자들의 경매를 피하기 위해 아파트를 판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는 점에 관한 정황 증거들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만약 입증에 실패하면 1억2천만원에서 백대여씨가 반환할 5천만원을 공제한 7천만원을 노란은행측에 반환해야 할 법적 위험이 있습니다.
이제는 부동산을 살 때 등기부등본만을 확인할 것이 아니라, 매도인이 등기상 보이지 않는 다수 채권자들을 따돌리고자 하는 의도로 부동산을 매도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주의를 기울일 사실상의 의무가 매수인에게 생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