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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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질서

2003년 05월 14일 (수) 00:00:00

이상은

최근 우리나라에 등록된 승용차가 천만대를 넘어섰다고 한다. 고종황제가 최초로 자동차를 타기 시작한지 불과 100여년 만에 천만 배 증가한 것이다. 지난 87년에 세계은행과 공동으로 우리나라 하수도 장기계획을 수립할 때 내한했던 세계은행 컨설턴트 한 명이 서울의 극심한 교통정체에 놀라(그분은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서울의 교통 상황을 'super saturated condition' 즉 차량 한대만 증가해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라고 묘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차량 숫자가 몇 배 늘어났지만 아직 폭발하지 않고 사람이나 차량들 모두 잘 다니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 도로 사정이 그만큼 좋아진 것일까? 아니면 차량 등록대수는 증가했어도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차량은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동안 서울의 도로연장이 길어졌다고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차량들을 수용하기에는 부족하고 지하철이 계속 확장되면서 많은 교통인구를 수용하고 있지만 노선문제와 타 교통수단과의 연계 미흡 등으로 기대한 것만큼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교통체계가 효율적으로 개선되어 차량들의 소통을 원활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규정 속도로 주행을 해도 신호마다 걸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보면 교통체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 같지도 않다. 신호마다 대기하면서 낭비되는 에너지와 공회전으로 인한 대기오염 등은 둘째로 하더라도 진행신호가 떨어지면 다음 신호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전속력으로 질주해야만 하는 운전 습관을 유도하고 있는 것 같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들 각 부문에서 어느 정도의 개선이 이루어짐에 따라 얻어지는 효과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급격한 차량증가에도 불구하고 교통상황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super saturated condition에 가까운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의식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후반 우리의 교통 의식 수준은 그야말로 무질서한 수준이었으며 이같이 낮은 의식 수준 때문에 그리 많지 않은 차량들이 무질서하게 주행하면서 외국인의 눈에 폭발직전의 상황으로까지 비친 것이다. 80년대와 비교할 때 그동안 교통 뿐 아니라 사회전반적으로 의식수준이 많이 향상되어 교통문제 해소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 비해 교통 의식 수준의 향상은 괄목하다고 할 수 없어 아직도 자주 무질서한 교통 혼잡에 접하게 되고 이같은 무질서에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교통질서의 기본은 양보라고 할 수 있다. 파리 시내를 지나다 보면 신호등이 그렇게 많지 않고 로터리가 많아 차량들이 상당히 무질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들은 로터리가 가장 효율적인 차량교차 수단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우선권자에게 양보한다는 철저한 양보의식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통질서에 대한 의식 수준은 로터리에서도 교통신호에 의해 질서를 유지시켜야만 하고 신호등이 없거나 신호등이 고장 난 교차로에서 서로 먼저 가려고 경쟁하다 교차로를 완전히 막아버리기도 하는 수준이다. 고속도로에서 도심으로 빠져나가는 길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어 신호를 받아야만 고속도로로부터 일반도로로 진입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양보 의식이 결여된 교통질서 의식은 신호등에 의해서만 교통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직진 차량이 좌회전 차량에게 한번 양보하면 좌회전차량들이 줄을 이어 좌회전을 하면서 양보했던 차량을 포함한 직진차량들의 진로를 막는 모습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같이 양보를 모르는 교통현실은 도심을 질주하는 버스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OECD국가 중 어느 나라 대도시에서 많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버스가 시내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버스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버스전용차로가 있으나 버스 전용차로 외에 모든 차로들이 전용차로인 양 곡예운전을 하는 버스들이나 버스정류장에서 먼저 도착한 앞 버스가 떠나기 전에 뒤에 도착한 버스가 먼저 출발하느라 옆 차선으로 진입하면서 일대의 교통이 혼잡해지는 것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이같이 양보를 모르는 대중 교통수단이나 승용차 운전자들의 모습이 우리 교통의식의 수준인 것이다.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 되어 있는 사회에서 자동차 사용을 제한한다는 것은 임시방편적인 대책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양보를 근본으로 하는 교통질서 의식이 확립될 때 좁은 공간에서 많은 차량들을 소화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양보를 근본으로 하는 의식의 확립은 교통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도 기본적인 요소이다.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연에게 인간의 욕구를 양보해야 하며 소유에 대한 강한 욕구를 양보하는 것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와 생활 각 분야에서 양보를 기본으로 할 때 주거, 교통, 환경에 부담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사회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