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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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를 대비한 행정수도의 이전

통일 한반도 수도 위상 갗추어야

2003년 01월 01일 (수) 00:00:00

조명래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새 정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 같다. 공약으로서도 이미 뜨거운 공방이 되기도 했지만, 추진이 실제 결정되면 추진방식을 둘러싼 국민적 논란은 더욱 요란스러울 것 같다.
선거과정에서 한 후보는 행정수도가 옮겨가면 서울의 집값이 폭락하고 경제의 공동화가 초래될 것이라 했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들이었다. 하지만 이전문제의 뚜껑을 막상 열면 짚어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전과 관련된 직접적인 문제, 가령 이전 대상, 범위, 시기, 방식, 재원의 문제는 물론, 이전 후의 수도권 관리, 나아가 국토관리를 어떻게 해갈 지 등은 모두 사전에 철저히 짚어봐야 할 것들이다.
행정수도이전의 정당화는 서울 일극으로 집중된 국토불균형을 해결한다는 데 있다. 수도권은 이미 전 인구의 반정도가 몰려 있는 지역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집도를 보이고 있다. 수도권 과밀은 '집적의 경제'란 이점을 낳기도 하지만, 반대로 과도한 집적에 따른 엄청난 불경제(不經濟)를 발생시키고도 있다. GDP의 11% 이상에 육박하는 높은 물류비는 대개 수도권 과밀에 따른 혼잡비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구화 시대 경쟁력은 지역과 지방의 경쟁력에서 나온다.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국토의 불균형을 이대로 둔 채 국가경쟁력을 도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점에서 국가행정의 중심부를 서울로부터 지방으로 옮기는 것은 국가권력의 분산과 함께 지방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행정수도의 이전이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그 국토는 이젠 통일된 한반도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일은 한반도 전체가 하나의 국토가 됨을 의미한다면 행정수도는 멀지 않은 장래에 실현될 통일 한반도의 수도로서 위치와 위상을 처음부터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행정수도의 이전은 수도권 집중의 완화를 통한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통일 후 남북 지역간 통합을 도모하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통일을 전제한 국가권력의 공간적 분업은, 남한의 중부지역(예, 대전)에 관리의 효율성을 우선하는 행정부를 두고, 북한의 중부지역(예, 평양)에 민주적 합의를 우선하는 입법부를 두며, 한반도의 중부인 서울에는 형평성을 우선하는 사법부를 입지시키되, 한반도 경제활동의 거점은 서울에 두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사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남아공의 경우, 행정부(대통령궁)는 북쪽 프리토리아에 위치해 있고 의회는 남쪽 케이프 타운에 위치해 있는 반면, 경제활동의 중심은 중부 내륙의 요하네스버그에 있다. 남아공의 이러한 정치적 공간분화는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나누어 통치되었던 남아공 역사의 공간적인 결과이자 그 반영인 셈이다.
통일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든, 남한과 북한은 오랫동안 하나의 독자적인 정치적 자율성을 유지해 왔고, 각각은 나름대로의 체제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는 바, 이를 통일 이후에서도 일정하게 살려냄으로써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유기적으로 통합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전제 하에서 지금 거론되고 있는 중부지역은 통일 이후 행정수도를 위한 위치로서 무리가 없으며, 그곳으로의 수도이전은 글자 그래도 행정부의 중추기능을 옮겨가는 데 국한해야 한다. 입법부, 사법부의 이전은 별도로 고려되거나 통일될 때까지 서울에 계속 두어야 한다. 행정부의 이전도 통일 이후를 배려한다면 선별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가령, 행정부 기능 중에서도 청와대와 세종로 일대에 위치한 중앙정부 부서 중심으로 옮겨가되, 과천의 중앙정부 기능과 시설은 가능하다면 통일될 때까지 그대로 두거나 최소한만 옮겨가도록 해야 한다. 통일의 진전 정도에 따라 이전할 중앙부서의 범주와 규모를 달리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제한된 부분에서 행정부의 중추기능을 단계적으로 이전하자는 것은 통일을 대비해 탄력적으로 옮기자는 의미에 더해, 이전의 과도한 비용을 줄이자는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이런 전제를 충족하면서 청와대와 세종로 청사의 중앙부서 중심으로 옮겨간다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당초에 제시했던 6조원 정도의 이전 비용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든, 이전은 서울의 정부청사나 부지의 처분비용을 재원으로 해야 하며, 그 재원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중추기능의 이전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전에 무리수가 따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계획적이며 단계적으로 이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전기간은 총 30여년으로 잡고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추진되어야 한다. 첫 10년은 이전을 위한 마스터 플랜의 작성, 기반조성, 선도부분(예, 청와대, 세종로 청사 중앙부서)의 이전을 중심으로, 두번째 10년은 그 밖의 중앙부서를 서울과 다른 지역으로부터 이전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세번째 10년은 통일행정수도로서의 기능과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전사업이 나누어 추진되어야 한다.
프로필
△영국 서섹스대학교 박사(도시 및 지역학) △현재, 단국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사)한국도시연구소 소장 △한국공간환경학회장 △(사)내셔널트러스트 운영위원장 △(사) 환경과 생명 편집장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위원 △경기도도시계획위원 등 △행정자치부 공익사업평가위원 등 △주요 저서로는 '포스트포디즘과 현대사회 위기', '녹색사회의 탐색', '현대사회의 도시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