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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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사이의 부동산 정책

부동산 초과수요 줄이는 장기대책 마련해야

2002년 11월 22일 (금) 00:00:00

노영기

노영기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한국경제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사이의 질곡에 빠져있다. 금리를 올리자니 디플레이션이 걱정되고, 금리를 더 내리자니 인플레이션이 걱정된다. 국민의 정부 출범이래 대중주의(popularism)적 임시방편으로 남발되어 온 부동산정책의 후유증이 한데 모아져 나타나고 있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다.
IMF 이후 정부는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들을 무분별하게 거의 모두 풀었다.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분양권 전매가 묵인되었으며 주택건설을 부추기기 위한 온갖 편법 조치가 남발되었다. 당연히 삼척동자도 예견할 수 있었던 강남 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 거품 =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정부는 다시 부동산 시장을 규제하다 못해 세무조사라는 극약까지 처방했다. 그 결과 부동산 투기는 진정(?)되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경기가 너무 죽다 못해 디플레이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경기 부양정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쓸 수 있는 경제정책이 아무 것도 없다는 데에 있다. 경기를 빨리 살리는 데에는 그래도 부동산 경기 활성화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수개월 전에 풀었다가 수주일 전에 조인 부동산 시장 규제를 다시 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소비나 생산경기를 부추기고자 금리를 더 내릴 수는 더 더욱 없는 일이다. 금리를 내리면 그렇지 않아도 과잉상태인 유동자금이 증가해 곧 바로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리할 수도 저리할 수도 없는 진퇴 양난의 상황에 빠져있는 것이다.
섣부른 경기 부양책은 금물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을 통한 어떤 경기 부양책도 현 상황에서는 독약일 뿐이다. 160조원이나 풀린 공적자금과 저금리에 따른 무분별한 가계대출 등의 풍부한 유동자금은 일순간에 부동산 투기를 재연시킬 수 있는 폭약이기 때문이다. 더욱 우리의 부동산 투기 문제는 공급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위적으로 길들여지고 활성화 되어온 만성적인 초과수요의 문제여서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가 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차제에 부동산에 대한 초과수요를 줄이는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강남 발 부동산 투기 대책으로 나온 조치들 중 특히 부동산 보유과세 관련 조치들을 더욱 강화하고 다듬는 일이 필요하다.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거나 빠져나갈 구멍이 많으면 그 효력이 반감되거나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형성에 영향을 주는 회계관행을 손질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기업들의 골프접대비를 비용처리에서 제외시키면 골프장에 대한 법인 수요가 줄어 골프 회원권 시장이 안정될 것이고 이는 다시 부동산 시장 전체의 안정분위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과열에 대한 우려로 낮은 금리 상황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저금리는 세계적인 추세이며 부동산에 대한 초과수요의 고질적인 원인들을 제거하여 수요패턴을 정상화한다면 풍부한 유동자금은 오히려 산업투자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도권의 과밀화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국토관리체계를 재정비하는 일은 기본이다. 이에는 특히 입시과열경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교육제도의 혁신과 서울시의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개발계획 등이 망라 되어야한다. 이러한 기본구도의 변화 없이 최근 하루가 멀다하게 나오는 서울시의 강북개발계획은 부동산투기에 버금가는 죄악이며 단연코 자제되어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 정도를 걸을 때이다. 특히 정권말기의 과욕과 노욕을 자제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중주의적 꽁수보다는 국내외 경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물가안정을 중심으로 정책당국을 포함한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정중동의 대책으로 디플레이션의 위기를 사전에 막는 일이 중요하다.
프로필
△충남 공주 출생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경제학 박사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장 △UNDP 자문위원으로 말레이시아, 아랍 에미레이트 등 경제발전자문 △중앙중소기업 연구소장(현) △중앙대학교 경제연구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