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아 모처럼 서울동물원을 찾았다. 여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코끼리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마스크 밖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몸과 마음들이 확 열린 때문일 것이다.

(‘불꽃의 새’ 홍학들의 모습)

안내지도를 펴들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리가 긴 홍학(紅鶴)들이 얕은 물 위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홍학 즉, 플라밍고(Flamingo)의 어원은 스페인어인 ‘Flamenco’로 알려져 있다. ‘불꽃(Flama)의 새’ 의미란다.

홍학들과 작별을 하고서 도착한 곳은 동양관. 토쿠원숭이·뉴기니악어·샤망·그물무늬왕뱀·흰손기번 등 희귀한 동물들이 있는 곳이었다.

특이한 뱀 이름들...호감도 높아

‘Talk, Talk SNAKE!! 꿈꾸는 푸른 생명, 뱀’이라는 안내문이 호감도를 높였다.

시대가 변한 것일까. ‘뱀’관에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가족단위였다. 어른들보다는 어린아이들이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뱀 수호신 조각 ‘카킬람베’)

‘부족민을 보호하는 뱀’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조각 그림이 걸려 있었다. 설명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뱀의 무늬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이 조각은 뱀 수호신조각(Protective Serphant)으로 카킬람베(Kakilambe)라고 불린다. 이 조각은 바가 부족 남자아이들의 성인식에 사용하는데, 성인식을 주관하고 성인식을 치르는 남자아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부족민들은 성인식 기간 동안 소년들이 변하였음을 알리고자 마을에 이 조각상을 세우는데, 어떤 것은 머리장식 형태로 만들어 가면처럼 사용하였다.>

‘카킬람베’는 아프리카 기니(Guine)의 바가(Baga)부족의 마스크 춤이다. 그것은 마을의 어르신들이 가면에서 나오는 밧줄을 붙잡는 특별한 기념행사다. 춤은 천천히 시작되고 예언자에게 다가올 해에 대한 질문을 한다.

‘농작물이 잘 자랄까요?’ ‘건강이 좋을까요?’ ‘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날까요?’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지고 사람들이 축하 박수를 보내면 축제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른다.

인간의 라이벌 뱀...저주와 숭배의 대상

(인기 만점인 밀크스네이크)

뱀들의 이름도 특별했다. 킹스네이크(King Snake), 콘스네이크(Corn Snake), 밀크스네이크(Milk Smake)...형형색색의 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볼거리였다.

동물원에서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최초의 예언자 ‘멜람푸스’·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지팡이’·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한국의 열두 띠 ‘십이지신(十二支神) 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문을 그림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뱀을 싫어한다. 뱀은 사람의 발꿈치를 물고 사람은 돌로 그 머리를 친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뱀 있나?’ ‘뱀 없어?’라는 말을 인사말처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뱀에게 한번 물린 사람은 10년 동안 두레박줄만 보아도 놀란다’는 속담도 있다.>

이어령 선생(1934-2022)이 책임 편집한 책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 뱀>은 이렇게 시작된다.

(세계 신화 속의 뱀: '아담과 이브' 이야기)

그러면서 뱀은 ‘숭배와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종교적인 관점에 따라서 다른 점을 부각했다.

<기독교·유대교·이슬람 문화권에서 뱀은 ‘아담과 하와를 꾀어 원죄를 짓게 했다’는 ‘창세기’의 이야기에 따라 ‘사탄’이라 부른다. 지독한 저주(詛呪)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출애굽의 길을 떠났던 고대 이집트에선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뱀은 고귀한 왕관의 정면을 장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야·잉카의 문명권에서는 뱀이 숭배의 대상이었다. 책에 담긴 뱀 숭배 이야기다.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차에는 ‘쿠쿨칸(마야어로 뱀이라는 뜻)’이란 피라미드가 있고, 멕시코시티 교외의 테오티우칸 유적엔 ‘깃털을 단 뱀(케찰코아틀)’이 조각돼 있다. 이들에게 있어 뱀은 하늘과 땅을 통합하는 신(神)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뱀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싫어한다. 뱀이 지닌 독성(毒性)과 징그러운 생김새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뱀은 우리네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다시 이어령 선생의 글과 함께 해본다.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신화·전설·민담에는 유난히 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징그러우면서도 끌리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다...12지로 시간을 계산하고 춘하추동을 정하며, 그 방위와 연도를 헤아려온 한·중·일 세 나라에서는 지금도 12명 가운데 한 명은 뱀띠로 태어나고 있는 셈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누가 뱀띠인가?’

'뱀에 대한 오해 풀어야'

요즈음 정치권에서 말실수도 여론의 질타를 받는 인사들이 많다. 이럴 경우 뱀의 혀(舌)로 비유되기도 한다. 뱀이 쉬지 않고 혀를 입 밖으로 뻗쳐 날름거리기 때문에 ‘유혹의 사탄·이간질·수다의 대명사’가 되고 있어 서다. 그러나, 거기에 큰 오류가 있다. 다시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 뱀>으로 들어가 본다.

“뱀은 시각·청각·후각이 있지만 그 가운데 후각이 가장 예민하다. 뱀은 콧구멍 외에도 입속에 냄새를 맡는 중심기관인 야콥슨(Jacobson)기관이 있다. 뱀은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입 밖으로 뻗쳐 날름거려서 혀끝에 묻은 냄새를 바로 알아낸다. 뱀이 쉬지 않고 혀를 날름거리는 이유는 단지 냄새를 맡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천진기).

우리는 냄새를 맡으려는 뱀에게 ‘유혹의 사탄·이간질·수다의 대명사’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상대를 폄하(貶下)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간에. 동물원을 다녀와서 배운 또 하나의 ‘삶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