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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금당벽화(金堂壁畵)
2021년 02월 26일 (금) 11:01:09 편집팀 정리 renews@renews.co.kr
   
(안병호 작가: 동학사 가는 길, 천년의 불꽃, 오타 줄리아, 아름다운 사람 루이델랑드, 어링볼, 철의 왕국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신라인들은 나무표면에 아름다운 천연색 단청을 칠했고, 건물 회벽을 캔버스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위대한 화가가 많이 탄생되었다.

황룡사를 중건하고(AD569) 9층탑을 만들 때에 ‘솔거(率居)’라는 위대한 화가가 있었다. 솔거는 빈농(貧農) 출신이었으나 그림 그리는 재주를 지니고 태어났다. 그가 황룡사 금당벽화를 그렸는데 그중에서 소나무그림이 유명하다. ‘그 그림을 보고 새가 날아와 앉으려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경주 분황사 관음보살상과 진주 단속사 유마상(維摩像)도 솔거가 그렸다고 한다.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대담 스토리가 있다. 심오한 불법을 논하는 장면이어서 옮기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솔거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제48권 열전 제8(三國史記 卷第四十八 列傳 第八)에 실려 있는데, 불상도 조각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가 얼마나 신기의 화가였으면 역사서에 기록될 정도였을까? 이런 저런 해역서를 보다 보면, 솔거이야기를 하면서 황룡사의 규모·형태가 함께 기록되어 있음도 볼 수 있다. 황룡사가 유명해 진 것은 그 크기도 상당했지만, 솔거의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그림은 AD1238에 몽고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만다.

바티칸 시스티나성당(Cappella Sistina)에 그려진 그림을 직접 보지 않았을 때에는 미켈란젤로(1475-1564)가 그림을 그린 캔버스가 솔거가 그린 그림들의 캔버스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사찰의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쉽게 보며 지나쳤었다. 바티칸에서 한국사찰에 그려진 그림들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솔거의 자취를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깝다. 그러나 명백한 기록이 현존하고 있다.

시스티나성당 그림은 ‘석회 바탕에 물감이 스며들게 해서 그렸다’고 한다. 어떠한 경우이든 그림은 캔버스가 필요하니, 석회바탕의 캔버스라는 얘기다. 석회는 그대로 벽돌이나 돌의 표면에 바르면 오래가지 아니한다. 습기를 잘 머금기 때문에 방수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한 석회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에는 한천(寒天: 우뭇가사리과)이라는 해초가 쓰여 왔다. 뒤에 천(天)자만 인용해 천초(天草)라 부르기도 한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초여서 오래 전부터 식용이나 건축용으로 쓰여 왔다.

미켈란젤로가 한천을 회에 섞어 발랐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천을 섞지 않았다면 신라사찰에 그린 벽화바탕보다 정밀도가 떨어질 것이다. 신라의 사찰에 그린 벽화의 캔버스는 한천을 섞어 바른 회로 만들어졌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한천을 섞은 것이 아니라, 한천을 섞은 회벽에 그림을 그린 것일 게다. 모르긴 해도 미켈란젤로의 캔버스도 한천을 섞지 않으면 아니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탈리아 반도는 바다를 끼고 있으므로 이러한 생활적 방식은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발달되어 있었으리라 본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심했을 것이다. 천연접착제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면서 공업적으로 기여한 것은 아교(阿膠)다. 미켈란젤로도 시스티나 성당 벽화 바탕에 아교를 칠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신라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보다 천 년 전부터 대량의 아교를 생산했다. 가축이 많지 않은 신라에서 엄청난 양(量)의 아교가 생산된 것은 다름 아닌 고래였다. 고래는 바다에서 사는 포유동물이다. 이를 알아차린 신라인들이 고래의 껍질로 고아 아교를 생산했던 것이다. 고래는 포유동물이기 때문에 새끼를 낳았다. 새끼를 낳고는 필요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신라 앞 바다에 자라고 있는 미역을 먹으려 모여들었다.

왜 고래들이 신라 앞 바다에 자라는 미역을 먹으려 왔을까? 미역이 자라고 있는 신라 앞 바다의 해저 바위는 철분이 함유된 바위다. 철분이 함유된 해저 바위에 착근하여 자라는 미역은 자연 많은 철분을 함유한다. 고래 떼가 그러한 것을 알고 있었다. 신라인들은 근해에 몰리는 고래를 작은 전마선을 타고도 잡을 수 있었다. 큰 몸집의 고래가 아니었고 작은 몸집을 가진 고래가 대부분이어서 포획하기가 쉬웠다. 신라인들이 고래가 미역을 먹으러 온다는 것을 안 것은 잡은 고래의 내장에 소화되지 않은 미역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 동물들의 삶이 지극히 신비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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