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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靈魂)으로 이은 한일 가교(架橋)
2019년 07월 16일 (화) 10:06:44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아사카와 노리타카·다쿠미’ 형제의 뿌리를 찾아서
 
호텔이라기보다는 숲 속의 집. 동이 트기 전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을 열자 공기가 상쾌했다. 하늘이 높아서일까. 소나무, 녹나무, 물참나무... 야마나시(山梨)의 나무들은 키가 무척 컸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호텔 근처의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였다. 야마나시의 하루는 이렇게 열렸다.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이 즐비한 야마나시의 숲


아사카와 형제의 할아버지는 시인이었다
 
이날은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다쿠미(巧)의 뿌리를 찾기로 했다. 길잡이는 ‘아사카와 노리타카·다쿠미 형제 추모회’의 치노 쓰네오(千野恒郞·77) 회장이 했다. 고불고불 소로를 달리자 아사카와 형제의 할아버지의 시비(詩碑)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다. 다카네초(高根町) 고초다(五丁田) 네거리에서 북서쪽 수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 역시 키가 큰 나무들이 꽉 차 있었다. 풍우에 시달린 듯 퇴색된 비(碑)가 나무들 사이에 서있었다. 오래된 신사(神社)의 경내였다.
 

   
아사카와 형제 할아버지의 시비(詩碑)

“끊임없이 들리는 소리는 저 멀리 첫 까마귀.”
 
두 형제의 할아버지 덴에몬(小尾伝衛門/ 号, 四友)이 쓴 시다. 첫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새해 첫날 우는 것을 말한다.

어떤 할아버지일까.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가 쓴 <아사카와 다쿠미의 평전>(김순희 譯)에 담긴 내용을 빌어본다.
<할아버지는 핑계를 대거나 불평하지 않고 늘 즐겁게 일하셨고, 주위 환경에 늘 흥미를 갖고 계셨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 사이의 인정이나 시(詩)를 발견하시곤 했다. 그래서 시인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고, 단순한 농사꾼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학자는 아니었지만 일하면서도 하이쿠(俳句: 일본의 시 형식 중의 하나)의 소재를 찾아내시는 분이었다.>
 
이 글은 아사카와 노리타카가 생전에 남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평전에 의하면 형 노리타카는 ‘다쿠미가 바로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흘려버리는 성격이 아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두 형제는 할아버지의 DNA를 닮은 것이다.
 
아사카와(浅川) 가족묘지... 두 형제는 유골이 없는 가묘(假墓)
 
시비에서 아래로 걸어 내려가자 공동묘지(農業公園)가 있었다. 모퉁이에 있는 묘지 앞에서 치노(千野) 회장이 발걸음을 멈추면서 말했다.
“여기가 아사카와 가족의 묘지입니다.”
 
그런데 통상의 가족 문양 대신 십자가가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필자의 표정을 본 치노(千野) 회장이 말했다.

   
아사카와 가족 묘지/ 아사카와 가족에 대해서 설명하는 치노 회장


“노리타카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아사카와 형제의 유골은 없고, 영혼만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다. 다쿠미의 묘지가 한국의 망우리에 있으니 당연한 말이다. 그의 설명대로 노리타카(伯敎)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나이가 들수록 성경책과 더욱 가까이 했다. 이러한 형의 영향으로 다쿠미(巧) 역시 기독교인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에미야 다카유키(江宮隆之·71)의 소설 <백자의 사람>에 그의 생각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자유로운 정신,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 그리고 박애. 이것을 기독교의 교리라기보다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쿠미는 형으로부터 세례를 받고서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했다. 아사카와 다쿠미의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가 본다. <아사카와 다쿠미의 평전>을 통해서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장례식은 경성 감리교회 다나카(田中) 목사가 주재했다. 성경을 낭독하고 찬송가도 불렀다....전도사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 1867-1962)가 성경을 읽었다. 그는 ‘조선 고아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3·1운동 때 체포된 조선 사람들의 구명 운동에도 앞장 선 사람이다. 그 역시 합정동 양화진 외인 묘지에 잠들어 있다.>
 
소다(曾田) 전도사도 당시 아사카와 노리타카·다쿠미 형제와 함께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비가 그치자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 후지산


“요즈음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저기 후지산(富士山)을 보십시오. 비가 그치니까 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보이고, 맑은 하늘이 나오지 않습니까? 양국의 관계도 어려운 순간이 지나면 분명히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아사카와 형제의 영혼이 이렇게 일한 관계를 잇고 있으니까요.”
 
‘아사카와 노리타카·다쿠미 형제 추모회’ 치노 쓰네오 회장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필자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렇다. 서로 흥분하지 말고 이성적인 견지(見地)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순간, 아사카와 다쿠미가 생전에 했던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조선인과 일본의 친선(親善)은 정치와 정략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조선과 일본이 서로 예술로 교류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하나가 된 한국의 현창회와 일본의 추모회
 
한국에도 아사카와 노리타카·다쿠미 형제 현창회(顯彰會: 회장 조만제)가 있다. 일본의 추모회에 비해 회원 수는 많지 않으나 창립 역사(23년)는 같다. 이들은 두 조국을 사랑한 형제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마음을 한데 모은 것이다. 국적, 나이, 이념과 관계없는 순수한 민간인 모임이다. 

   
한국의 노치환 사무국장(좌)과 일본의 히나타 요시히코 사무국장(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일본의 ‘노리타카·다쿠미 형제 추모회’ 사무국장 히나타 요시히코(比奈田善彦·65)씨와 한국의 ‘아사카와 노리타카·다쿠미 형제 현창회’ 사무국장 노치환(56)씨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인사말을 건넸다.
 
“형님! 오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동생! 수고 많았어요.”
 
이들의 목소리가 공명(共鳴)이 되어 야마나시의 ‘야쓰가타케(八ヶ岳)’로 메아리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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