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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마녀 배달부’
2019년 05월 01일 (수) 18:14:24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일본 ‘쇼도시마 올리브 공원’의 캐릭터 이야기
 
한자(漢字)의 의미로 보면 ‘작은 콩의 섬’이나 쇼도시마(小豆島)는 가가와현(香川県)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세토내해(瀬戸内海)에서도 아와지시마(淡路島)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면적(153.30km2)을 가지고 있으며, 인구는 3만 여명이다.
 
페리에서 도노쇼항(土庄港)에 내리면 인접 공원에 ‘올리브의 노래비(碑)’가 있다. 히로시마 출신 후타바 아키코(二葉あき子, 1915-2011)가 부른 노래의 3절을 까만 바탕에 악보까지 새긴 노래비가 눈길을 끈다.

   

'올리브의 노래' 비(碑)

<세토(瀬戸)의 곶(岬)에서 남유럽 바다를 그리면/ 올리브 여무는 나뭇잎 바람이 너를 부른다/ 아!아! 푸른 하늘 푸른 파도/ 쇼도시마의 산(山)을 잊을 수 있을까.>
 
‘가사도 멜로디도 인상적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20여분쯤 달리자 올리브공원 역(驛)이 나왔다. 버스에서 내려 바다를 등지고 언덕길을 올랐다. 공원으로 들어서자 올리브 나무 가지들이 손짓했다. 바람 따라 진한 허브(Herb) 향(香)이 코끝을 스쳤다.
 
2,000그루의 올리브 나무와 120종 허브(Herb) 공원
 
<이 공원은 올리브의 고향 그리스를 모티브로 한 올리브와 허브가 가득한 매력적인 명소입니다. 약 2,000그루의 올리브 나무와 120종의 허브가 자라고 있는 공원에는 치유(治癒)의 기운이 감돕니다. 공원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 지실 것입니다.>
 
공원의 안내문에 쓰여 있는 글이다. 공식 명칭은 ‘쇼도시마 올리브 공원.’ 안내문대로 올리브와 허브 향(香)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쇼도시마 올리브 공원’에는 올리브 기념관, 꽃과 향의 가든, 만남의 광장, 그리스 풍차, 선 올리브(Sun Olive) 등 다양한 체험관이 있다. 기념관 앞 하늘을 찌르는 조각품 ‘내일에의 메시지(友愛)’도 돋보였다. 요즈음 사람들이 ‘우애(友愛)’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듯싶어서다. 이 상징물은 올리브공원 건설당시 자매도시인 이바라키시(茨城市)와 쇼도시마 마을이 서로의 우호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웠다. 올리브 기념관 앞에서 고개를 돌리자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리브 향과 허브 향과 자연의 향기-자연스럽게 ‘청정지역’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빗자루를 들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

그런데, 빗자루를 들고 어디론가 가는 젊은 아가씨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렇다고 해서 발걸음이 바쁜 그들을 불러 세워 물을 수도 없었다.
 
‘저들은 어디로 급히 가는 것일까?’
 
필자는 고개만 갸우뚱하면서 기념관 내부로 들어갔다. 아테네를 연상하게 하는 건축 양식과 조각품들이 있었고, 올리브의 기원과 전파(傳播)에 대한 기록들이 세세하게 전시돼 있었다.
<올리브는 시리아에서 터키를 거쳐서 기원전 14-12세기의 사이에 그리스로 확장되었다. 대제국을 세운 로마인에 의해서 올리브 재배가 지중해 연안으로 확대되었다. 그 후 15세기 말 아메리카대륙발견과 함께 올리브 재배는 대서양을 넘어 멕시코, 페루, 캘리포니아, 칠레, 아르헨티나에까지 뻗어나갔고, 남아프리카, 호주, 중국, 일본에 재배되기에 이른 것이다.>
 
올리브의 원조가 그리스 이전에 아시아의 ‘시리아’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흥미로웠다.
 
일본에 올리브 오일(Olive Oil)이 전래된 것은 1574-1598년 포르투갈 선교사에 의해서였다. 그 당시 일본인들은 올리브 오일을 ‘포르투갈 유(油)’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도시대 쇄국정책에 의해 일본인들이 올리브 오일을 접하지 못했다. 올리브도 위정자들에 의해 수난을 당했던 것이다.
 
농장을 돌아보면서 올리브나무들이 정원수, 울타리용, 열매용 등 각기 다른 용도에 따라 재배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품종도 오일용, 피클용 등 각기 달랐다. 예를 들어, 미국산 미션(Misson)은 피클과 오일 겸용이며, 스페인어로 ‘작은 사과’인 만자니로(Manzanillo)는 피클용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올리브 농장의 나무들

농장은 크고 넓었다. 돌계단을 오르는 동안 등에 땀이 주르르 흘렀다. 올리브나무를 붙들고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손놀림도 사뭇 진지했다. 일에 방해가 될까봐 망설이다가 말을 걸었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빗자루의 비밀이 풀렸다.
 
“영화 ‘마녀의 배달부’의 주인공 흉내를 내려는 것입니다. 기념관의 벽면에 걸려있는 마법의 빗자루를 빌리시면 됩니다. 검정색 빗자루가 더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영화, ‘마녀의 배달부’로 시선 집중
 
영화 ‘마녀의 배달부(魔女の宅急便)’의 촬영지가 바로 올리브 공원이었다. 원작자는 아동문학가 가도노 에이코(角野栄子·84). 1989년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8) 감독에 의해 애니메이션 영화화되기도 했다. 2014년 시미즈 다카시(清水崇·47) 감독에 의해서 실사 영화로 다시금 만들어져 시선을 모았다. 영화의 무대가 올리브공원이었고, 주연은 신출내기 고시바 후카(小芝風花·22)였다. 영화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13세 소녀 ‘키키’는 완벽한 마녀가 되기 위한 수행의 여행을 떠난다. 동행자는 검은 고양이 ‘지지’. 바다를 좋아하던 ‘키키’는 마음씨 착한 ‘오소노’를 만나게 되고 배달부 일을 시작한다. 천성적인 씩씩함과 모험심으로 온갖 역경을 극복해낸다. 어른을 대할 때, 또래를 대할 때, 혼자 있을 때 각각 말투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마녀의 배달부' 영화의 한 장면

작품이 내재하고 있는 메시지는 성장기의 소년소녀들이 겪을 소외감과 좌절감에 대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지만.

호기심이 발동한 필자도 그리스 풍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얀 풍차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온갖 포즈를 취하면서 길게 촬영을 하는 관광객도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빗자루를 들고 껑충 뛰면서 하늘을 나는 모습을 연출했고, 빗자루가 없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동작을 취하는 나이가 제법 무거운 관광객들도 있었다.

   
'나도 영화의 주인공이다'는 모션을 취하는 관광객들의 모습

그리스 풍차가 있는 곳에서 바라본 세토 내해의 푸름이 그리스의 에게 해(Aegean Sea)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워서 기념 촬영 장소로는 으뜸으로 손꼽는다.
 
올리브 시험재배에 성공했으나 아픔이 있어
 
쇼도시마가 어떻게 해서 올리브의 섬이 됐을까?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정부가 홋카이도(北海道) 지역에서 잡은 생선들을 올리브 오일(oil)에 절이기 위해서 미에켄(三重県), 가고시마켄(鹿児島県), 가가와켄(香川県)의 쇼도시마 세 곳을 지정해서 올리브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메이지 41년(1908)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두 지역은 실패하고 쇼도시마만 성공했습니다. 쇼도시마가 일본의 올리브 발상지가 된 것입니다.”

   
올리브 재배의 시작과 공원의 역사

공원 직원 사에키 신고(佐伯真吾·42)씨의 말이다. 하지만, 이 농장이 오늘에 이르기 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사에키(佐伯)씨의 설명이다.
 
“1955의 후반 경 올리브의 재배 농장은 꽤 넓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산물로서의 가격 면에 외국으로부터의 수입 제품에 밀렸습니다. 결국, 재배 면적이 줄어들었죠. 설상가상(雪上加霜) 1974년 및 1951년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서 이 일대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농지로서의 재해복구가 이루어졌으나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젊은 사람들이 섬을 떠나 도시로 가면서 황폐 농지와 휴경(休耕)농지가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쇼도시마를 방문한 사람들도 ‘올리브의 섬이라면서 올리브나무가 너무 적다’는 불평도 있었습니다.”
 
세상사 쉬운 일이 없는 법. 시험재배에 성공한 곳이 황폐농지가 될 정도로 추락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기 관광지로 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사에키(佐伯)씨의 말을 들어봤다.
 
“농장이 황폐해지는 가운데서도 현(県)의 꽃과 나무, 마을(町)의 꽃과 나무로 지정하면서 올리브를 지키려고 하는 기운이 높아졌습니다. 올리브시험농장을 중심으로 공원을 정비하면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면서 올리브 공원이 만들어졌던 것이지요. 영화 ‘나와 엄마의 노란 자전거’, ‘세토해적 이야기’ ‘마녀 배달부(실사판)’ 등의 촬영지가 됨으로서 인기 폭발, 오늘의 올리브 공원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한 때 폐허의 농장이었던 곳이 지금은 연간 3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공원 관계자 그리고, 올리브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을 나서자 세토내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초록의 올리브 가지가 바스락바스락 흔들렸다. 후타바(二葉)가 부른 ‘올리브의 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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