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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개의 눈동자’ 영화마을 이야기
2019년 04월 23일 (화) 11:41:11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영화와 문화의 섬, 쇼도시마(小豆島)”
 
가가와(香川)현 ‘쇼도시마(小豆島)의 로드맵’을 들고서 다카마쓰(高松) 항에서 페리에 몸을 실었다. 페리의 이름은 올리브 라인(Olive Line)-쇼도시마는 다카마쓰에서 약 20km 떨어진 북동 해안에 위치한 곳으로, 세토(瀬戸) 내해의 섬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천연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생물의 종류가 많으며, 일본 최초의 올리브 발상지이기도하다. 
 
다카마쓰를 출발한 페리는 한 시간 여 만에 도노쇼항(土庄港)에 도착했다.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서 관광 안내소를 찾았다. 담당 직원은 필자가 소지한 ‘쇼도시마의 로드맵’에 볼펜으로 표시를 하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일차적 목적지 ‘평화의 군상’은 항구와 인접한 공원에 있었다. ‘평화의 군상’에 대한 안내문의 내용을 요약해서 옮겨본다.

   
항구 근처에 있는 '평화의 군상'

<소설 ‘24개의 눈동자(瞳)’는 쇼도시마 출신 작가 쓰보이 사카에(壺井栄, 1899-1907)의 작품으로, 쇼와(昭和)시대 초기 다노우라 곶(岬)의 분교를 무대로 젊은 여교사 오이시(大石) 선생과 그의 제자 12명에 대한 이야기다. 쇼와 29년(1954년)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 1912-1998) 감독·다카미네 히데코(高峰秀子, 1924-2010) 주연으로 영화화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쇼와 31년(1956년) 11월 1일 제막됐다.>
 
‘평화의 군상’을 통해서 쇼도시마가 낳은 ‘쓰보이 사카에’의 불후의 명작 ‘스물네 개의 눈동자(瞳)’와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무장하고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영화 탄생 65년...여전히 인기 만점

   
쇼도시마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줄을 서자 스르르 버스가 다가왔다. 버스에도 ‘24개의 눈동자 영화마을’ 광고문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좌석이 메워졌다. 동작이 늦은 사람은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를 서서가야 한다. 사람들이 많아서다. 영화가 상영된 지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인기 만점인 것이다. 버스는 속도에는 관심이 없는 듯,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섬마을의 골목길과 산길을 고불고불 돌면서 아주 느리게 달렸다. 버스의 느린 주행으로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스물네 개의 눈동자] 영화포스터

드디어 영화마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우르르 영화마을 입구 매표소로 몰려갔다. 그러나, 먼저 도착한 발 빠른 사람들이 이미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일본인들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도 많았다.
 
“선생님! 아무것도 해드릴 것은 없지만, 같이 울 수는 있습니다.”

입구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오늘날 스승과 같이 울어주는 제자가 몇이나 있을까?’

입구에서부터 궁핍(窮乏)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영화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 유채꽃들이 바람 따라 춤을 췄다.

 
“선생님! 놀아요.”

   
[선생님! 놀아요]동상

쉬는 시간에 12명의 아이들이 교무실에 있는 오이시(大石) 선생을 불러내서 노는 모습이 동상으로 재현돼 있었다. 선생과 제자들이 함께 노는 모습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다. 영화마을 옆 바다도, 하늘도 맑고 푸르렀다. 신출내기 선생님과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눈동자처럼.

   
영화 마을과 바다와 하늘

원작자의 소설에는 ‘세토(瀬戸) 내해의 어느 마을’로만 나올 뿐 구체적인 지명은 없다. 하지만, 영화는 작가의 고향이 쇼도시마(小豆島)이기에 무대를 이곳으로 설정하고, 촬영도 여기에서 했다. 영화가 히트를 친 이후 ‘스물네 개의 눈동자=쇼도시마’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소설이 처음으로 영화화된 이래 올해로 65년째입니다. 지금까지 영화화 2회, TV드라마 6회, TV애니메이션 1회 등 총 9회가 영상화되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연간 20만 명이 이곳 영화마을을 찾습니다. 일본인 17만 명, 3만 명이 한국, 중국 등 외국인들입니다. 올가을에도 드라마가 새로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영화 마을에 근무하는 다카오카 쇼헤이(高岡昌平·42)과장의 말이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영화마을에 근무하는 다카오카 쇼헤이 과장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7년 후(1952년)에 발표 된 소설은 작가 자신이 전시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전쟁 중에 일반 서민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비극을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기조(基調)에는 평화가 깔려 있습니다...특히, 일본인들은 ‘교육의 원점이 여기에 있다’면서 이곳을 찾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도 옛날과는 달라지고 있으니까요.”
 
그렇다.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가 달라진지 오래지 않는가. 이는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영화마을에는 쇼와 시대 학교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필자는 그 당시의 책상과 걸상, 오르간과 아이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잠시 동심(童心)으로 돌아갔다. 
 
쓰보이 사카에의 인생 스토리
 
영화마을 곳곳을 한 바퀴 돌아본 후 필자는 ‘쓰보이 사카에(壺井栄)’의 문학관으로 갔다. 문학관 입구에는 작가의 이력과 작품에 대한 내용이 원고지의 형태로 쓰여 있었다. 

   
문학관 입구의 원고지 형식의 안내문

<쓰보이 사카에는 1899년 8월 5일 쇼도시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간장독 장인(職人)으로 낙천적인 성격이었고, 어머니는 철저한 규범주의 여인이었다. 사카에(栄)는 나이카이(内海)고등소학교를 졸업했으며, 16세의 봄부터 우체국과 마을사무소 등에 근무하면서 문학서를 읽었다.
1925년 고향 선배 쓰보이 시게지(壺井繁治, 1897-1975)를 따라 상경했고, 그와 결혼했다. 남편 시게지(繁治)는 프롤레타리아 시인. 사카에(栄)는 남편의 영향을 받아 1938년 처녀작 <무의 잎>을 발표했다. 이후 <달력> <첫 여행> <어머니 없는 자식과 자식 없는 어머니 >등 300편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했다. 신초 문예상, 아동 문학상, 문부과학대신 상(賞) 등을 수상했다.
 
‘스물네 개의 눈동자’는 전시(戰時) 중의 여교사와 생도와의 만남을 묘사했다. 전쟁이 초래한 불행을 호소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강한 바람이 독자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 후 많은 작품을 썼으나 병으로 쇼와 42년(1907년) 6월 23일 도쿄에서 사망했다. 향년 67세로.>
 
‘스물네 개의 눈동자’의 작품 속으로

   
쓰보이 사카에(사진: 야후재팬)

1928년(昭和 3年) 보통 선거가 실시되는 한편 치안 유지법 처벌이 엄격해진 어느 날, ‘여학교 사범과’를 갓 졸업한 오이시 히사코(大石久子)는 섬의 곶(岬)분교에 부임한다. 일학년생 12명(남자 5명, 여자 7명)의 아동들은 각각 개성에 빛나는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오이시 선생은 ‘이 눈동자들를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젊고 명랑한 오이시(大石)는 아이들과 친해진다. 그러나,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 양장 차림으로 등교하는 선생은 ‘하이칼라’라는 것을 이유로 보수적인 마을 어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사소한 오해로 매도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선생님 편이었다.
 
그러던 중 오이시 선생은 아이들이 파놓은 웅덩이에 빠져서 아킬레스 건(腱)이 파열돼 출근을 못한다. 선생님을 한결 같이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목격한 마을 어른들의 태도도 부드러워진다...오이시 선생은 ‘스물네 개의 눈동자’들과 헤어진다. 분교를 떠나 본교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발언이 어려워지고 애국이 강요되는 시기가 계속된다. 오이시는 선원인 남자와 결혼한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오이시의 남편은 군대에 끌려간다. 전쟁은 오이시 선생에게 큰 아픔을 안긴다. 남편이 해전(海戦)에서 전사한 것이다. 불행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 법. 어머니도, 막내딸도, 병으로 죽는다.

   
그대로 남아 있는 곶(岬) 분교와 선생의 자전거

오이시는 전쟁이 끝난 후(1946년) 다시 보결 교사로 분교에 돌아온다. 어린 아동들 중에는 12명 제자들의 친척도 있었다. 오이시 선생은 처음 만났던 12명 아이들의 모습과 새로운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돼 눈물을 흘린다. 그런 이유로 ‘울보 선생’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소설은 오이시 선생이 옛 제자들과 만나 맥주잔을 돌리면서 끝을 맺는다. 대미(大尾)는 제자 ‘마즈노’의 창가.
“봄날 높은 누각의 꽃 잔치로다
 돌리는 술잔에 그림자 어른 거리네”
 
<자신의 미성(美聲)에 ‘빠져들기라도 했다’는 듯 ‘마즈노’는 눈을 감고 불렀다. 노래는 6학년 때 학예회에서 마지막 순서로 그녀가 독창으로 불러서 인기를 끌었던 창가였다. (옛 친구) ‘사나에’가  갑자기 ‘마즈노’의 등에 매달려 흐느꼈다.>
 
필자는 이 소설에 대해 남다른 감회가 있는 사람과 통화했다. 그는 다름 아닌 소설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번역한 박현석(48)씨다. 그의 말이다.
 
“번역하는 동안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몸은 작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여선생님의 진심과, 그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순수한 신뢰가 사제관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료: 스물네 개의 눈동자 영화마을/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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