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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2019년 02월 08일 (금) 10:45:49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만난 ‘다카스기 신사쿠’
 
<막부 말(幕末)로부터 유신(維新)에...그 무거운 문을 열었던 젊은이들의 리더가 있었다.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생을 살았던 조슈(長州)의 지사(志士)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이다. 일본의 역사를 움직이고, 커다란 꿈이 생겨난 근대일본의 원점 야마구치(山口)를 거닐면서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物語)와의 만남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모노세키(下關)의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야마구치의 관광가이드 팸플릿’에 들어 있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1839-1867)에 대한 안내의 글이다.
 
히요리야마(日和山) 공원의 동상
 
다카스기 신사쿠는 혁명가, 풍운아, 폭주남(暴走男) 등 여러 개의 별명이 붙은 젊은 청년이었다. 그만큼 카리스마가 넘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시간 절약을 위해 택시를 이용해서 그의 동상이 있는 히요리야마(日和山) 공원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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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스기 신사쿠의 동상
벚꽃의 명소로 알려진 히요리야마 공원은 멀리 ‘간몬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공원의 중앙에 세워진 그의 동상은 높이 4.2m로 키가 컸다. ‘1936년 그의 70주기를 기념해서 세웠으나, 1956년 90주기에 도자기 동상을 새로이 건립했다’고 쓰여 있었다. ‘도자기 동상은 오카야마 비젠요(備前焼)에서 약 반년에 걸쳐 제작된 것’이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왼 손에  칼을 들고 있는 전설적인 다카스기 신사쿠-동상에서도 젊은 혈기가 느껴졌다.
 
거센 바람 때문에 길게 머물지 못하고 기다리던 택시를 타고서 그가 기병대(奇兵隊:기이한 군대)를 조직했던 시라이시 쇼이치로(白石正一, 1812-1880) 유적지로 갔다. 유적지는 큰 길 옆 코너에 있었다.
 
기병대를 창설한 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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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쇼이치로의 저택이 있었던 곳

시라이시 쇼이치로는 자영업으로 부를 축적한 호상이었다. 시라이시(白石)는 신사쿠(晉作)를 비롯한 유신의 지사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기병대는 1863년 6월 8일 그의 저택에서 결성됐다.
 
<최초로 결성된 제대(諸隊)는 다카스기 신사쿠의 기병대다. 총독아래 참모와 군감, 서기 등을 두고 창대 26인, 총대 99인, 포대 44인, 보병소대 63인 등이 배치되었다...제대는 죠슈번 개혁파의 무력기반으로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역사 전문가 성희엽(55) 박사의 저서 <조용한 혁명,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건국>에 들어 있는 기병대에 관한 내용이다. 성 박사는 “기병대는 신분제를 벗어나 구성된 최초의 군대 조직으로 제대(諸隊)라고 불렀다”면서 “제대는 사무라이(侍)만으로 편성되는 봉건 군대와 달리 사무라이와 평민이 동참한 혼성부대였다”고 했다.
 
막부의 죠슈(長州) 정벌이 시작되자 번(藩)은 좌우로 갈라졌다. 그래서 다카스기 신사쿠는 1864년 12월에 거병했다. 여러 기병대들의 호응을 얻은 신사쿠는 시모노세키 점령에 성공했다.
 
다카스기 신사쿠는 야마구치의 하기(萩)에서 태어났다. 열혈 팬도 많고 전설적인 에피소드도 많다. 하지만 생은 짧았다.
 
다카스기 신사쿠의 마지막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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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스기가 요양하던 곳
다카스기 신사쿠는 고쿠라(小倉)전쟁에서 조슈군을 지휘하고 막부 군과 싸우다가 지병인 결핵이 악화됐다. 사쿠라야마(桜山) 신사 근처에 작은 집을 짓고 요양생활을 했다. 舊요양지는 작은 골목길 비탈길에 있었다. 비(碑)에는 칠언절구의 한시(漢詩)가 새겨져 있었다.
 
흩어져가는 꽃도 가라앉는 석양도 원한은 끝이 없구나.
병으로 쇠약 해지는 몸에 한탄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도다.
사쿠라야마에 이주한 것을 의심하지 않기 바란다.
아침저녁 사당(廟) 앞의 낙엽을 쓸고 싶어라.
 
신사쿠가 병마에 시달리면서 요양을 하던 곳에서 한시를 풀어본 필자는, 그가 생을 마감한 흔적을 찾기 위해서 다시 택시를 탔다. 하지만, 택시 운전사도 쉽게 찾지 못했다. 차를 세우고서 지나가던 사람을 붙들고 물었으나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하던 운전사가 시모노세키 시청 관광과 직원과 통화하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한적한 골목길로 안내했다.
 
다카스기 신사쿠 종언(終焉)의 지(地)-
 
그곳 역시 찾는 사람은 없었으나 다녀간 흔적은 엿보였다. 안내문을 통해 그의 생애를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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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쿠가 생을 마감한 곳(1)

<다카스기 신사쿠(호: 東行)는 1839년 8월 20일 죠슈번사 다카스기 고추타(高杉 小忠太, 1814-1891)의 차남으로 하기에서 태어났다....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으로부터 사사(師事)를 받았다...기병대는 ‘지(志)’가 있으면 사무라이 이외의 자도 입대가 가능한 획기적인 군대였다. 막부군을 고쿠라에서 격퇴시켰으나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1867년 4월 14일 생을 마감했다. 향년 27세 8개월의 짧은 생애였다. 장례는 시라이시 쇼이치로(기병대 창설을 지원한 부호)가 주관했다. 이 비(碑)는 1926년 5월에 재건되었다. 비명은 죠슈번 출신인 유명 서예가 노무라 모토쓰케(野村素介)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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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쿠가 생을 마감한 곳(2)
다카스기 신사쿠는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라는 말을 남기고 메이지 유신(1868) 일년 전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고 말았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메이지 유신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침략의 씨앗이 발아(發芽)되기도 했다.
 
‘지금의 일본은 재미없는 세상일까? 재미있는 세상일까?’
 
필자는 ‘다카스기 신사쿠’가 생을 마감했던 장소에서 답을 얻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비록 일본인이지만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과감하게 막부와 맞선 젊은 혈기가  남달랐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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