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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평화! 싫증이 나도록 들었습니다.”
2018년 08월 17일 (금) 10:52:30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나가사키(長崎) 평화 기념상 이야기
 
“거리가 보인다.”
“Tally ho! 구름사이로 제2의 목표 발견!”
 
1945년 8월 9일 오전 10시 58분. 9,000미터 상공에서 투하된 원자폭탄은 4분 뒤인 11시 02분 나가사키시를 강타했다. 인구 24만 명 중 7만 4천 여 명이 숨지고, 건물 36%가 전소 또는 파괴됐다. ...피폭(被爆) 10년 만에 평화를 추구하는 의미에서 기념상이 세워졌다.


남성미 넘치는 청동 기념상

   
멀리 보이는 평화 기념상

얼마 전 필자는 나가사키(長崎) 마쓰야마초(松山町)에 있는 평화공원을 찾았다. 그동안 여러 번 방문했으나, 예전보다 더 정갈해진 느낌이었다. 공원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서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관광객들의 노고를 도와주기 위한 배려인 듯했다. 공원에 오르자 시원한 분수대가 반겼다. 무더울 때라서 물줄기만 봐도 시원했다. 물줄기 사이로 멀리 커다란 동상이 보였다. 평화 기념상이었다. 이 기념상은 1955년 8월 8일 완성됐다. 작가는 기타무라  세이보(北村西望, 1884-1987). 나가사키 출신의 조각가로 도쿄미술대학 졸업생이다.
 
공원에는 많은 조각품들이 있었다. 대체로 평화를 상징하는 것과 인간애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 기념상은 다른 조각품들과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자료를 토대로 조각품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정리해 본다.

   
평화공원의 조각상

<신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하고, 수직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오른쪽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뻗은 왼팔은 평화를, 옆으로 접은 왼발은 원폭투하 직후 나가사키의 정적을, 세운 다리는 구해진 생명을 표시하고, 가볍게 감은 눈은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있다.>
 
조각품의 표정에서 사랑과, 자비심이 느껴졌다. 인자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조각품의 높이는 9.7미터. 이를 받치고 있는 좌대를 포함하면 13.4미터가 된다. 무게는 약 30톤.
 
동상에 대한 찬반론도 만만치 않아


동상의 모델에 대한 뒷이야기도 분분하다. 우리가 잘 아는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이라는 설과, 유도선수이자 지도자인 요시다 고이치(吉田廣一)라는 설이다. 또한, ‘서양의 원폭이라는 구극적 무력의 피해 장소에 건장한 서양 남자를 상징하는 동상이 평화 기념비에 부합되는가?’하는 의견도 분분했다.

   
조각상의 얼굴

하지만, 작가는 “조각의 모습이 특정 인종(人種)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며 “인종을 초월한 인간으로, 때로는 부처, 때로는 신(神)으로 단지, 희생자의 명복을 빌 뿐이다”고 했다. 이글은 동상의 후면 작가의 말로 새겨져 있다.
 
평화 기념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시인도 있었다.  후쿠다 스마코(福田須磨子, 1922-1974). 그녀는 나가사키 사범대학에 근무하던 중에 피폭됐다. 부모님과 언니는 피폭으로 사망했다. ‘평화 기념상 설치에 부쳐서’ 시인의 <독백>이라는 시(詩)가 그녀의 심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무엇이든 싫어졌어요.
원자폭탄이 떨어진 땅에 우뚝 솟은 거대한 평화상
그건 좋아요, 좋다하여도
그 돈으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돌로 만든 상(像)은 먹을 수도 없고, 배를 채울 수도 없어요.
(중략)
 
평화! 평화! 싫증이 나도록 들었습니다.

평화 기념상은 그 당시 총 5,000만 엔(한화 약 5억 원)을 들여서 4년에 걸쳐서 제작됐다. 이 중 3,000만 엔은 국내외의 모급으로 충당했고, 2,000만 엔은 나가사키시의 예산으로 집행됐다.  ‘그 돈으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돌로 만든 상(像)은 먹을 수도 없고, 배를 채울 수도 없어요.’라는 피폭자 시인의 독백이 와 닿는다.
 
<생명을 사랑하다>라는 시(詩)에도 피폭자로 살아가는 절절함이 배어 있다.
 
새해 첫날에
절실히 내 생명을 사랑하노라
원폭의 상흔(傷痕) 가슴에 안은 채
절망과 고뇌의 가운데
숨이 끊일락 말락 10년
실로 살아서 왔도다.
슬픔과 고뇌의 십자가를 좆아서...


피폭자의 상처, 누가 치료해주나?
 
당시 징용으로 끌려와서 나가사키 조선소 등에서 일하다가 피폭된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약 2만 명의 조선 사람들이 피폭됐으며 약 1만여 명이 폭사(爆死)했다. 비문의 내용을 다시금 옮겨본다. 일본인들이 세운 관계로 맞춤법이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1910년 8월22일, 일본정부는 '일한병합조약'을 공포하여, 조선을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둠으로써, 자유와 인권, 귀중한 토지마저 빼앗겨, 생활의 수단을 잃은 많은 조선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다.

   
조선인 추도비(碑)

그 후, 일본에 강제연행으로 끌려와 강제노동을 당한 조선 사람은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패전당시에는 실로 2,365,263명에 이르렀으며, 나가사키(長崎)현에도 약7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가사키(長崎)시 주변에는 약 3만 수천 명의 조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미쓰비시 계열의 조선소·제강소·전기·병기공장과 도로·방공호·군수공사장 등 토목공사장들에서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9일. 미군의 원자폭탄투하에 약 2만 명의 조선 사람들이 피폭됐으며, 그 중 약 1만여 명이 폭사(爆死)했다.
 
우리들 이름 없는 일본사람들이 얼마간의 돈을 모아, 이곳 나가사키에서 비참한 생애를 보낸 1만여 명의 조선 사람을 위해 이 추도비를 건설했다. 지난 시기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그 민족을 강재로 끌고 와 학대혹사하며, 강재노동 끝에 비참하게도 원폭을 맞아 죽게 한 전쟁책임을 그들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핵무기의 완전철패와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하여 마지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상처는 씻어지지 않는 듯싶다. 그래도, 이름 없는 일본인들이 사과하고, 진정으로 그들의 명복을 비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내년 4월 퇴위를 앞둔 아키히토(明仁) 일왕(일본인들은 천황이라고 함)은 4년 연속 ‘깊은 사죄를 한다’고 술회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아베신조(安培晉三) 수상 등 약 7,000명이 참가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아베(安培) 총리가 6년 연속 ‘가해와 고통’ ‘깊은 반성’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반성과 사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평화가 이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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