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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는 ‘등 굽도록 일하라’, 청어알엔 ‘자손 번창하길’ … 음식 하나하나 깊은 뜻
손자 손녀 11명 와타나베의 설날
2018년 01월 22일 (월) 15:17:57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붓글씨로 신년휘호를 쓰는 아이들.

‘태양은 에너지이자 생명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태양으로 인해 생명이 잉태되고 약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과의 눈 맞춤을 위해서 바다로, 산으로 달려간다.

올 새해는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맞았다. 첫 새벽 해맞이를 위해 달려갔지만 하늘에 잔뜩 낀 구름 때문에 해를 보지는 못했다. 실망이 컸지만 오랜 친구이자 선배인 와타나베 아키라(渡邊章·70) 고문의 집에서 설맞이를 하기 위해 짐을 챙겼다. 그는 일본 굴지의 건설회사인 하자마구미(間組)에서 일했고, 대학의 사무국장도 지내고, 현재는 오노(大野)콘크리트 그룹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집은 후쿠오카시(福岡市) 서구 아타고산(愛宕山)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호텔에서 택시를 불렀다. 뻥 뚫린 거리를 씽씽 달리던 택시가 그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서 제동이 걸렸다.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아타고(愛宕) 신사의 신년 참배(初詣) 때문에 택시가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택시에서 내려 아타고산(愛宕山)을 올랐다. 8부 능선쯤에 다다르자 와타나베 고문의 집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10년 만이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와타나베(渡邊) 고문이 필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이층으로 올라가자 그의 부인(渡邊壽枝·67)이 아들·딸들과 손자·손녀들을 위한 설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그는 필자에게 벽장 안에 들어 있는 신단(神壇)에 기도하라고 했다. 필자가 ‘크리스천’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냥 앉으라고 했다. 술 한 잔을 권했다. “이 술은 설날에 마시는 오토소(御屠蘇)라는 약주입니다.”
 
일본인들은 설날에는 꼭 이 술을 마신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장수하라’는 의미에서다. 술을 담은 도소키(屠蘇器)라는 용기는 칠기·도자기·유리 등 다양하나 와타나베 고문은 칠기로 만든 것을 사용했고, 대·중·소 세 개의 잔이 딸려 있었다. 필자가 마신 오토소(御屠蘇)는 여러 종류의 약초에 사케(酒)와 미린 등을 넣은 것으로 술기운이 강하지 않았다.
 
잠시 후 와타나베 고문은 올해 받은 연하장(年賀狀) 묶음을 들어 보였다. 100여 장 쯤 되어 보였다. 일본의 연하장은 1906년 우정국 직원의 아이디어로 탄생해서 ‘연하 특별우편’ 제도로 정착됐다. 배달 방식도 특이하다. 12월 20일경까지 연하장을 우체통에 넣어두면 우체국에서 보관해두었다가 새해 아침 일제히 각 가정으로 배달한다. 이날 배달되는 연하장이 전국적으로 ‘40억 장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메시지로 연하장을 가름하는 우리와는 여전히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체국서 연하장 모아 새해 아침 일제히 배달 

   
신년참배객이 길게 늘어선 아타고산 신사.

뒤이어 그의 아들·딸들과 손자·손녀들이 선물보따리를 들고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집안에 있는 신단에 기도하고서 와타나베 고문이 부어주는 오토소(御屠蘇)를 공손하게 받아 마시고서 인사했다. 어린 아이들도 예외가 없었다. 일본인들의 세배는 우리처럼 죽 들어서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했다. 그렇다고 큰 절을 하지도 않았다.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세배를 마쳤다.
 
장녀가족을 뺀 삼남매 가족들은 어머니가 직접 준비한 ‘오세치(お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오세치’란 일본인들이 설날에 먹는 음식을 말한다. ‘오세치’는 본디 ‘경사가 겹친다’라는 의미로 층층이 포개진 찬합에 정성스레 담는다. 찬합의 기본은 4단으로 위에서부터 이치노주(一の重), 니노주(二の重), 산노주(三の重), 요노주(与の重)라고 한다. 이날의 ‘오세치’는 와타나베(渡邊) 가정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가족 모두가 자리에 앉자 집안 어른인 와타나베 고문이 맥주잔을 들고서 건배를 제의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건배!”
 
가족 모두가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고서 각자의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다시 자리에 앉은 와타나베 고문은 필자에게 ‘오세치’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모두가 엔기모노(緣起物: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기원하는 물건)입니다. 음식마다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왼 쪽 맨 위의 검은 콩(黒豆)이 있지요? 콩(豆)이 먹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아주 세밀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라’는 뜻에서 오세치로 만들어집니다. 또한 검은 콩에는 잡귀를 쫓아내고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새우는 ‘등이 구부러질 때까지 건강하게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필자는 일단 콩을 집어 입에 넣었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어서 등이 잔뜩 구부러진 새우를 먹었다. ‘새우등처럼 구부러질 때까지 건강하게 일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연근(蓮根)은 구멍이 뚫려 있지요? 구멍을 통해서 미래를 잘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즈음이 시즌입니다만 방어는 ‘좋은 며느리가 되게 해달라’는 부탁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일본의 설음식 ‘오세치’에 담긴 소원은 끝이 없었다.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청어알(数の子), 오곡풍년을 기원하는 멸치볶음(田作り), 학문과 교양을 기원하는 어육 계란말이(伊達巻)… 하나하나가 애절한 염원을 내재하고 있었다.
 
‘오세치’의 범주에 드는 ‘죠니(雑煮)’라는 국물도 재미있었다. ‘죠니’는 간장이나 된장으로 맛을 낸 것이나 우리의 떡국과 유사하다. 국물을 마시고 야채를 먹자 아래에 제법 큰 떡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와타나베 부인의 부연(敷衍) 설명이 있었다.
 
“이 ‘죠니’도 지역별로 다릅니다. 후쿠오카는 둥글게 떡을 만듭니다만, 도쿄의 떡은 사각형입니다. 어느 지역에서는 떡 대신 닭고기를 넣기도 합니다.” 

   
손녀에게 ‘오토시타마’(세뱃돈)를 건네는 와타나베 고문.

설날 아침에 어린이들은 새해인사를 한 뒤 ‘오토시타마(お年玉)’라는 세뱃돈을 받는다. 와타나베 고문의 세뱃돈을 주는 방식은 특별했다. 새해의 포부를 밝히는 아이에게 먼저 주는 선착순이었다. 장녀 가족을 뺀 손자·손녀 7명을 대상으로 했다.봉투에는 예쁜 그림과 할아버지가 쓴 메시지가 있었다. 얼굴이 둥근 소녀가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올해 저는 고교 1학년생이 됩니다. 올 일 년은 신나게 놀고 2학년 때부터 대학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외손녀 우치야마 카이리(內山 Kairi·16)의 포부 공개에 온 가족이 자지러졌다. 통상 ‘고등학생이 되니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신나게 놀겠다’고 하니 웃을 수밖에. “야구 연습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피아노를 열심히 치겠습니다.”모두의 포부를 들으면서 세뱃돈을 주는 할아버지의 얼굴도, 세뱃돈을 받는 아이들의 얼굴도 행복 만점이었다. 막차를 탄 두 살배기 아이(渡邊勘太)가 “저 … 유치원 가요!”해서 또 한바탕 웃음보따리가 터졌다.
 
뒤이어 와타나베 고문의 즉흥적인 요청으로 필자와 함께한 방문객의 피아노 연주가 설날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곡명은 와타나베 가정과 딱 어울리는 미국 민요 ‘언덕 위의 집(Home on The Range)’. 
 
와타나베 고문은 병원에 입원 중인 90살 넘은 노모를 모시면서 2남 2녀와 11명의 손자·손녀를 두고 있다. 저(低)출산과 핵가족 시대에 보기 드문 대가족인 것이다. 그는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배려가 중요하다. 가정은 엄격함과 너그러움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좀 엄격한 편이거든요. 자녀 교육이 엄격해야 하지만 너그러움도 있어야 합니다. 너그러움은 아내의 몫입니다.”
 
꿈 담아 붓글씨 쓰고 가까운 신사 참배 

   
새해 첫날 아침에 오세치를 나눠 먹으며 건배하는 와타나베씨 가족.

이어서 아이들이 붓글씨(書き初め:신년 휘호)를 쓰기 시작했다. 세뱃돈을 받으면서 밝힌 새해 포부를 글로 남기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필자와 와타나베 고문은 인접 아타고(愛宕) 신사로 갔다. 서기 72년에 세워진 신사로 후쿠오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 3대 아타고(愛宕) 신사 중 하나인 이곳은 액(厄)을 막는 곳으로 유명하다. 신사를 참배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은 길었다. 와타나베 고문은 ‘최소 한 시간을 기다려야 참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필자는 이들의 행렬을 카메라에 담고서 발길을 돌렸다. 신사를 내려오면서 그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다.
 
“일본과 한국이 우리들처럼 친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전 정부가 약속했던 것이 신정부의 정책과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번복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정곡(正鵠)을 찌르는 말이었다. 국가 간의 관계도 ‘엄격함과 너그러움이 조화를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와타나베 고문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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