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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진 설계 학교가 첫번째 피난소…방재센터는 수학여행 필수
2017년 12월 18일 (월) 12:56:32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남의 일 아닌 재난, 고베 대지진 현장 가보니

   
고베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를 방문한 학생들이 지진 강도에 대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관찰하고 있다.

고베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를 방문한 학생들이 지진 강도에 대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관찰하고 있다.

지진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아무리 심각하게 말해도 그동안 우리에게는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다’라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지난달 15일 오후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후에 최근까지도 여진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필자는 이러한 현실을 접하면서 고심하던 중, 벤치마킹 차원에서 지난 8일 일본 고베(神戶)로 날아갔다.

매뉴얼 재정비하고 내진 공법 강화

   
이와타 고하치 KI코퍼레이션 대표가 완벽히 복구된 1995년 한신 대지진 피해 현장에서 지진 당시 사진을 들고 비교하고 있다.

이와타 고하치 KI코퍼레이션 대표가 완벽히 복구된 1995년 한신 대지진 피해 현장에서 지진 당시 사진을 들고 비교하고 있다.

1995년 고베(神戶) 지역의 한신·아와지 대지진, 2011년 도호쿠(東北) 대지진, 2016년 구마모토(熊本) 대지진. 근래에 일본 열도를 뒤흔든 대표적 지진이다. 대지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이들 지진이 리히터 규모 7.0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도호쿠와 구마모토는 아직도 그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상처 치료에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고베는 그 날의 악몽을 완벽하게 털어버리고 새롭게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지진 발생 시 대응하는 매뉴얼을 재정비하고, 내진 공법을 강화했으며, 시(市)·구청 등 공공기관에서 전방위적인 위기관리팀을 운영하고 있다.
 
고베에 도착해 이와타 고하치(岩田耕八·74) KI코퍼레이션 대표와 함께 그가 22년 전 지진을 겪었던 현장으로 갔다. “저기가 제가 살던 집입니다. 이 지역이 송두리째 폐허가 되었죠. 그날 새벽(5시 46분) 집이 심하게 흔들리자 ‘이렇게 죽는구나!’ 하면서 아내를 꼭 껴안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하늘에 목숨을 맡겼습니다. 딸아이는 해외 유학 중이었고, 두 아들은 3층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이와타 대표는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이면서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사진을 보니 처참했던 당시의 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목조 건물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지혜로 피아노와 가구 등 덩치가 큰 물건들을 벽과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시켰기 때문에 큰 상처를 입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서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탈출하여 근처의 공원으로 갔습니다. 공원은 큰 나무들이 많기 때문에 뿌리들이 지반을 공고(鞏固)히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저기 있는 공원입니다.”
 
그의 말대로 공원에는 큰 나무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때의 아픔은 잊어버린 듯. “지금 기차가 달리는 철도,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집들도 몽땅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서 그는 공원에 세워진 위령비 앞으로 필자를 안내했다. 이와타 대표와 친하게 지냈던 이웃 75명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모두 잘 아는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지진을 겪은 이후의 삶은 그저 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서요.”
 
다음 날 아침 이와타 대표와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를 방문했다.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많았다. “이 센터는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경험과 교훈을 후세에 전하고, 재해에 의한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2002년 세워진 시설입니다. 지진 발생 7년 만입니다.” 센터의 담당 직원 마쓰무라 가나코(松村嘉奈子·45)가 설명했다.
 
필자가 “일본의 경우 지진 발생 시 학교나 체육관 등 공공시설로 대피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라고 질문했다. 마쓰무라 담당은 “첫 번째 피난소는 학교입니다. 운동장이 넓기도 하지만 완벽한 내진 설계로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는 내진 설계로 지어진 학교가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4층으로 올라가서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주는 영상물을 봤다. 고베 토박이 야마다 가즈오(山田一夫·65)는 “태풍은 발생지와 경로를 예측할 수 있는데, 지진은 예측할 수 없으니 ‘무섭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칠흑 같은 어둠 헤쳐갈 손전등 중요

   
한신 대지진 피해 상황을 전시한 기록물과 물품들

2층에서는 지진에 대비한 비상용품과 내진(耐震)·면진(免震)에 대한 조형물, 액상화(液狀化)의 시뮬레이션을 보여 주고 있었다. 비상용품은 배낭·물·식품·헬멧·운동화·장갑 등의 장비, 다용도 나이프와 10m 정도의 밧줄, 휴대 라디오, 휴대전화, 연락 메모지, 필기도구, 신분증, 유성 매직 펜, 현금 등이다. 감기약이나 소독약품 등도 필수 품목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센터 자원봉사자들은 방문객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분이 평소 갖추고 있어야 할 지진 대비 품목의 체크리스트입니다. 마을이나 자치회에서 결정한 피난소에 대해 인지하고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지진 발생 시 어디서 만날지’를 평소에 공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손전등입니다. 강진(强震)이 오면 어김없이 전기가 끊겨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됩니다. 무너진 집과 흐트러진 가구들을 헤치고 대피소로 가기 위한 길잡이가 바로 빛(손전등)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진 피해를 본 후 ‘스스로 자원봉사를 지원했다’는 다나카 게이코(田中惠子) 할머니는 “헬멧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거나 찾지 못했을 경우에는 방석을 머리에 얹고 대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쓰나미 경보 땐 먼저 높은 산으로 가야”

   
쓰나미에 대비해 일본어·영어·중국어·한국어로 표시된 표고와 피난 빌딩 안내판(위). 손전등과 헬멧 등 지진에 대비해 갖춰야 할 기본 품목.

쓰나미에 대비해 일본어·영어·중국어·한국어로 표시된 표고와 피난 빌딩 안내판(위). 손전등과 헬멧 등 지진에 대비해 갖춰야 할 기본 품목.

내진(耐震)·면진(免震)에 대해 설명하는 코너에서는 학생들이 센터 관계자들의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다소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건물의 기초가 되는 말뚝(파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뚝에 34m의 쇠말뚝을 연장한 곳은 지난번 지진에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견학을 마치고 돌아가시면 부모님께 꼭 전달하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고베 지역이 아니라 멀리 후쿠오카(福岡)에서 단체로 수학여행을 왔다고 했다. 수학여행을 관광지로 가지 않고 지진 관련 시설을 찾는 것도 특이했다. 일본의 경우 5~6월과 11~12월 수학여행 시즌에 반드시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를 견학하도록 한단다.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불어넣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고베 지역은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예측 불허의 쓰나미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하고 있었다. 고베역 앞 센츄리온 호텔의 가네코 슈케(金子周平·43) 차장은 “먼저 높은 산으로 가도록 돼 있습니다. 고베가 항구라서 도호쿠 지진처럼 쓰나미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저녁 식사 중에 대화를 나눈 가사네 테쓰야(重哲也·45) 요리사도 “지진 경보가 울리면 인접 NHK 방송국이나 식품 회사의 옥상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것을 평소 인지하고 있으며, 훈련에도 참가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다음날 취재 중에 거리 곳곳에서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영어·중국어로 쓰인 ‘여기는 해발 7.5m’와 같은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도호쿠 대지진의 경우 도쿄전력은 쓰나미의 한계치를 8.0m에서 11.8m로 정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16.7m의 쓰나미가 덮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허물어진 상태로 보존, 관광객 눈길 끌어
 
   
고베항 지진기념공원.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에서 나와 ‘고베항 지진 기념 공원’으로 갔다. 이 기념 공원은 일본 국내외의 많은 사람이 하나가 되어 항구의 복구·부흥에 노력한 모습을 후세에 전하고 대지진의 교훈과 항구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 1997년 9월 조성됐다. 공원에는 기울어진 전봇대와 무너진 60m 벽체가 허물어진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대지진의 기록 사진과 피해 상황 등의 자료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고베는 여러 각도에서 언젠가 닥쳐올지 모르는 지진에 대응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고베시청의 위기관리실은 체계적인 위기대응을 하기 위한 중추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 정비한 위기관리정보시스템, 소방 신(新)관제시스템 등을 운용하는 본부이기도 하다. 재해발생 시 시민과 관계기관 등에 신속한 정보를 제공한다.
 
고베는 22년 전 6434명의 사망자와 14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당했다. 그날의 아픔이 오늘의 고베로 재탄생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지진에 대한 대책이 더디기 그지없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정부·지자체·국민 모두가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지반(地盤)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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