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靜岡)의 역사 탐방(5)

슈젠지(修善寺) 온천은 시즈오카(靜岡)현 이즈(伊豆)시 북부의 이즈반도에 있다. 일본 100대 온천으로 불리는 이곳 온천수의 성분은 약(弱) 알칼리(Alali)이다. 슈젠지(修善寺) 온천에는 전설과 역사와 인생이 가득 담겨 있다. 온천수처럼 따뜻하게.

마을 중심에는 슈젠지천(修善寺川)이 흐른다. 사람들은 이 강을 통상 가쓰라가와(桂川)로 부른다. 이 강을 중심으로 양편 길과 언덕에 관광지와 호텔, 여관,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807년에 세워진 슈젠지(修禪寺)

지명(地名)에서 풍기는 것처럼 이곳에는 유명한 사찰이 하나 있다. 발음은 같으나 한자가 다른 슈젠지(修禪寺)-

때마침 일요일을 맞아 사찰을 찾는 일본 관광객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진지한 모습들이었으며, 대체로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었다. 사찰 입구에 쓰여 있는 안내문을 들여다봤다.

슈젠지(修禪寺)의 입구

<슈젠지 온천의 발상지이며, 헤이안(平安, 794-1185) 시대의 초기인 807년에 고보(弘法)대사가 세운 고품격의 절이다. 이곳 경치가 중국의 로산(盧山)과 닮았다고 해서 쇼로잔(肖盧山)이라고 불렀다. 가마쿠라(鎌倉, 1180-1333) 초기 때이다. 하타케야마 쿠니키오(畠山國淸)와 아시카와 모토우치(足利基氏)의 전쟁에 휘말려 1401년 모두 불에 타고 말았다. 1489년에 호조 소운(北条早雲, 1432-1519)이 재건해서 소도슈(曺洞宗)로 개칭됐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온천지대 사찰의 간단한 안내문에서 얽히고설킨 일본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복잡한 역사 문제는 뒤로한다.

슈젠지의 본당

이 절을 세운 고보(弘法, 774-835)대사는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학구파로서 불교에 대한 저술을 많이 했으며, 서예에도 능한 승려로 유명하다. 그는 신곤슈(眞言宗)의 시조이다. 일본의 명물인 ‘사누키(讚岐) 우동’을 중국에서 최초로 들여온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사찰이나 신사에는 대체로 우물이 있다. 손을 깨끗이 씻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라는 의미이다. 슈젠지(修禪寺)에는 다른 곳과 달리 따뜻한 온천수 우물이 있었다.

사찰내의 온천수를 마시는 일본 관광객들

‘마셔도 좋다’는 안내문에 따라 필자는 따뜻한 온천수로 목을 축이고 본당 앞으로 갔다. 사찰의 곳곳에서 세월의 두께가 느껴졌다. 진지하게 기도하는 일본 관광객들과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돗코(独鈷)의 유(湯)’

다리에서 바라본 '돗코노 유(湯)'

“이즈(伊豆)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지요.”

일본의 한 관광객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필자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돗코의 유(湯)’에 대해서 설명했다.

우리가 독고(獨鈷)라고 하는 '돗코(独鈷)'는 무엇인가. 불교에서 사용되는 불구(佛具)로 양끝이 뾰족한 동제의 금강저(金剛杵)이다. 안내문의 내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고보(弘法)대사가 807년 슈젠지를 방문했을 때 이 하천(桂川)에서 병든 부친의 몸을 씻겨주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의 효심에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부자(父子)에게 따뜻한 물을 주고 싶은 대사는 그들에게 말했다. 

“냇물이 너무 차갑지 않는가! 내가 그대들에게 따뜻한 물을 주겠노라.”

대사는 들고 있던 돗코(独鈷)로 하천 가운데에 있는 바위를 때렸다.

“아니. 이럴 수가!”

따뜻한 온천물이 바위를 뚫고 솟아올랐다.

“온천수가 부친의 병(病) 치료에 효험이 있을 것이로다.”

십 수 년 동안 고질병을 앓던 소년의 아버지는 온천수로 인해 병을 치료하게 되었으며, 이 때 부터 ‘온천욕이 요양과 치유에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일본 전국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관광 필수 코스가 된 '돗코노 유(湯)'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의 일이다. 이곳 사람들은 슈젠지 온천이 ‘요양과 치유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설 같은 이야기이나 감동적이다. 일본의 온천수는 신비스럽게도 병을 치유하는 곳이 많이 있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피 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의 역사도 있어

필자에게 손짓을 하는 일본인을 따라서 골목 언덕길을 올라 담벼락을 따라가자 허리가 굽은 어느 할아버지가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고, 일본 관광객들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미나모리노 요리이에의 묘지

빛바랜 건축물 옆에는 미나모토노 요리이에(源頼家, 1182-1204)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미나모토노 요리이에(源頼家)는 가마쿠라 막부의 제2대 쇼군(將軍)으로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의 적장자(嫡長子)였다. 어머니는 이즈 호족의 딸 호조 마사코(北条政子, 1157-1225). 그는 아버지 요리토모(賴朝)가 낙마하자 18세에 제2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 됐다. 요리이에(頼家)가 권력 강화를 꾀했지만 외척 호조씨(北条氏)들이 막부 창업 공신들인 유력 고케닌(御家人)들과 13인의 합의제를 출범시킴으로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결국, 호시탐탐 권력을 노린 외척 호조씨(北条氏)에 의해 쇼군직을 박탈당했다. 이즈(伊豆)의 슈젠지(修禪寺)에 유폐됐다가 1204년 외조부에 의해 살해됐다.>

권력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 권력자들은 유폐도 모자라서 온천에서 목욕하고 있던 요리이에(頼家)를 살해했던 것이다. 그것도 외조부가. 이러한 내용을 주제로 한 <슈젠지 모노가타리(物語)>라는 소설과 영화가 한때 일본에서 인기 만점이었다.

그의 묘지 옆에는 비명으로 스러져간 아들 요리이에(頼家)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그의 모친 호조 마사코(北条政子)가 세운 작은 암자가 있다. 이름 하여 시케쓰텐(指月殿)-시케쓰는 경전(經典)을 의미한다.

모정이 서린 시케쓰텐

이즈 최고(最古)의 목조불상

근처에서 선물가게를 하고 있는 일본인은 “미슐랭 별을 두 개나 받은 이즈(伊豆)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당 내의 불상도 연꽃 받침도 모두 역사의 숨결이 스민 목조 물이었다. 이 또한 이즈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불상이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細流)를 벗 삼아

숲이 우거진 가쓰라강

“산책 중에 여울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細流)를 들으면서 족탕을 즐겨보세요.”

<슈젠지 온천지도>에 쓰인 안내문대로 필자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족탕에 발을 담갔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탓에 일본의 유명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노래 <강물이 흘러가듯이>의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무심코 걸어온 좁고 긴 이길
돌아보면 아득히 먼 고향이 보이는 구나.

험한 길과 구불구불한 길
지도조차 없는 그 또한 인생

(중략)

강물이 흘러가듯이
고요하게
내 몸을 맡기고 싶어
강물이 흘러가듯이
언제까지나
맑은 물 흘러가는 소리(細流)를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