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시즈오카(靜岡)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신문을 펼치자 일상의 철학자 알랭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저서 <뉴스의 시대>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뉴스는 겁먹고 동요하고 괴로워하는 대중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는 것과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말이다.

‘여행 중이라도 뉴스를 잊자.’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착륙 20분 전이라는 멘트가 나왔다. 멀리 후지산(富士山)이 눈에 들어왔으나 구름의 방해로 또렷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후지산

공항의 공식적인 이름은 '후지산 시즈오카(富士山 靜岡)'-

후지산의 사진과 그림들이 계절별로 전시돼 있었다. 높이 3,776m의 후지산(富士山)은 2013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이유는 예로부터 일본인들의 마음 속 깊이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돼 왔고, 또 후지산을 주제로 한 문학과 시·연극· 회화 등 예술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공항은 작고 조용했고 입국 수속도 빨랐다. 시즈오카 시내(市內)로 가는 버스를 탔다. 물이 꽉 찬 논길을 느리게 달리던 버스는 큰 길에서 비로소 속도를 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다. 어둠이 찾아든 시간은 아니었으나 사람들과 나무, 건물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80년 오뎅거리 아오바요코초(靑葉橫丁)

시즈오카 역 앞의 비즈니스호텔에 짐을 풀고 도심으로 갔다. 일차 목적지는 아오바요코초(靑葉橫丁)에 있는 오뎅(御田) 거리였다. 이곳은 21개의 오뎅 가게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37년도부터 형성된 곳이다.

아오바요코초 오뎅 거리(1)

아오바요코초 오뎅 거리(2)

두리번두리번 가게를 들여다보다가 한적한 가게 하나를 찾았다. 나고야(名古屋)라는 간판에 친근감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서 오세요.”

가게 이름이 '나고야'인 오뎅 가게

좌석이 10여개 정도인 가게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혼자서 운영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두부, 죽순, 버섯, 계란, 소고기, 무... 수많은 오뎅들이 우리네 인생처럼 서로 뒤엉켜 있었다.

필자는 이것저것을 골라 먹었다. 맥주는 기본. 맛을 떠나 서민적인 가게 자체가 호기심을 유발했다.

아버지의 고향을 간판으로 내걸고 50년

50년간 한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나카타 씨

나카타 카즈요(中田 kazuyo·70)라는 주인 할머니는 “부친이 나고야(名古屋) 출신인 관계로 가게 이름을 ‘나고야’로 붙였다”고 했다. 아버지의 고향 ‘나고야’의 간판을 달고 한 자리에서 50년 동안 오뎅 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어언 5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군요.”

필자는 주인 할머니에게 ‘오뎅’의 정의를 간략하게 설명 해달라고 주문했다.

“잘 아시겠지만 오뎅은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지요. 간장 국물에 어묵과 무, 곤약, 삶은 달걀 등을 넣고 끓입니다. 맛은 지역마다 다시(出汁:국물)와 다네(種:어묵의 종류)가 다릅니다.  특히, 시즈오카는 소고기 힘줄로 끓인 검은 색 오뎅 국물이 진하고 깊은 맛이 납니다.”

‘일본의 오뎅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에 두부로 만든 ‘덴가쿠(田樂)’요리를 줄인 것과 존칭어인 ‘오(御)’를 붙인 ‘오뎅(御田)’이라는 합성어가  탄생한 것이다.

아오바요코초(靑葉橫丁) 오뎅 거리는 한 두 개의 포장마차가 불어나 21개의 가게들로 한데 뭉치게 됐다.

필자는 우연히 한국 관광객을 만났다. 그들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어렵게 찾았다’고 했다. 다정하게 셀카를 찍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필자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커트 찍었다.

여행 온 한국 관광객 부부

필자는 그들과 작별을 하고,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우리의 경우 식당들이 너무 자주 바뀐다. 50년 80년이 아니라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달라진다. 커피숍이 식품 가게로 바뀌기도 하고, 맥주집이 옷가게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식당의 경우 처음에는 좋은 재료와 정성을 다해서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다가 초심을 잃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아오바요코초' 오뎅 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본 특유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아주 사소한 것이 때로는 위대함을 발한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호텔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