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좋은 모습으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좋으련만...그가 떠난 뒤에 그 빈자리가 커 보이는 사람이면 더욱 좋겠지만...>

대우 출신 이정구(李禎久·74) 씨가 쓴 책의 제목은 <떠난 뒤 그 빈자리가 느껴질 수 있다면>이다. 필자는 그의 책을 펼치는 순간 깜짝 놀랐다. 필자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창조(創造), 도전(挑戰), 희생(犧牲)”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창조, 도전, 희생이라는 여섯 글자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호소력이 넘치고, 역동성을 내품는 젊은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사훈은 처음이었다.”

그의 대우 입사 동기는 바로 사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6년 10월이다. 그의 마음은 가을 단풍처럼 빨갛게, 속절없이 대우에 물들어갔던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감동시켰을까.’

필자 역시 그의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문득,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詩) 한 구절이 떠올랐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아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시인의 마음은 강물처럼 굽이치고, 철학자의 마음과 삶의 법칙을 배우면서 살아간다’고 했던가.

<떠난 뒤 그 빈자리가 느껴질 수 있다면-앞 뒤 표지>

이정구 씨의 <떠난 뒤 그 빈자리가 느껴질 수 있다면>의 책은 울산화력 발전전소, 미국 연수, 대우조선 LLDPE, 이란 진출, 대우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참여 등 저자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노력했던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는 2003년 대우건설에서 퇴임하고서 강원도 영월 운학산 아래 허름한 농가를 샀다. 거기에서 서예(書藝)를 익히고, 나아가 연필 스케치를 하면서 2년여 동안에 이 책을 썼단다.

공대 출신인 그가 아무리 문장을 다듬어 보려고 해도 어려운 작업이었을 터. 그래도 흔적(痕迹)을 남기려고 애쓴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의 노력은 멜트다운(Meltdown: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것)이 아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염원. 누가 떠나더라도, 누군가 그 빈자리가 채워지기만을 기다리면서, 조용히 살고 싶은 그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필자는 대우의 '창조, 도전, 희생'에 이어 이정구 씨의 새로운 멜트다운(Meltdown)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