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구마모토(熊本) 현에 아마쿠사(天草)라는 섬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섬이 아니다. 5개의 다리로 규슈 본토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일본 전체가 섬이니 굳이 따진다면 모두가 섬이다.

구마모토역에서 버스로 2시간 반을 달리면 아마쿠사의 중심지 혼도(本渡)가 나온다. 거기에서 다시 마을버스로 한 시간 쯤 산허리를 돌면 시모다(下田)이라는 한적한 온천 지대와 만난다. 고즈넉한 시모다 온천은 바다와 인접해 있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일몰(日沒)이 아름다워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이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뽑는다.

필자는 민박 온천에 짐을 풀고 서둘러서 바닷가에 나갔다. 일몰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마을을 가르며 흐르는 강물이 느린 흐름으로 바닷물과 합류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온 작은 게들이 도로를 활보하고 있었다. 태풍 18호 ‘차바(CHABA)’가 다가오는 관계로 파도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구름사이에서 자태를 드러내는 태양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시모다 온천의 일몰(1)

“아! 참으로 아름답구나!”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멋드러진 연출(?)이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태양이었으나 이곳에서의 모습은 유난히 달라보였다. 수평선 아래로 잠기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장소는 다르지만 문뜩 정미경의 소설 <아프리카의 별>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해가 막 지평선 아래로 내려간다. 도화선의 마지막까지 타들어간 유황덩어리가 한순간 폭발하듯. 석양은 아름다운 불꽃으로 하늘을 가득 채운다. 불꽃은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수 천 조각의 빛을 뿌리고 흩어진다. 그 빛 속에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가루라도 들어 있는 걸까.”

소설에서의 화룡점정(畫龍點晴).

“아름다움이란 치명적인 극단이다. 삶의 균형을 잃게 하고 때로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시모다 온천의 일몰(2)

시모다(下田) 온천 해안의 일몰을 보면서 더 이상 어떤 말로도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더불어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젊은 사람이나 어린아이들이 보이지 않고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만 거리를 거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보다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일본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말을 잘 건넨다, 특히 이곳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유난히 길게 인사말을 했고, 자리를 뜨지 못하도록 말을 이어갔다.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다.

필자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82세의 한 할머니는 자신의 신상을 자세하게 쏟아내었다. 보청기를 끼고 있었으나 그나마 잘 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의견만 시시콜콜 일방적으로 토로했다.

“나이를 먹으니 약만 늘어나지요. 지금 병원에 약 타러 가는데 버스가 안 오네요. 버스가 들쑥날쑥 제멋대로예요. 눈이 잘 안보여서 운전도 못하겠어요. 자식들은 도회로 떠나서 오지도 않고...”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우리 보다 더 심각한 일본의 고령화 사회의 단면이다. 온천 지대이면서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에서 그러한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삶의 균형을 잃게 하는 것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아름다움이 치명적인 극단이기도 하나 ‘외로움도 치명적인 극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