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반(半) 우려 반(半)- 남북 고위급 관계자들의 팽팽한 줄다리기 협상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시민들의 마음은 그저 불안하기만 했던 주말이었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은 시민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필자는 지난 23일 모처럼 장충체육관을 찾았다. 대지 1만 865㎡. 건평 7,755㎡. 수용인원 8000명. 1963년 2월 1일 개관된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경기장이다. 세월의 흐름 때문일까. 시시각각 달라지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이 체육관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아직은 페인트 냄새와 여기저기 출입금지의 안내판이 있었으나 옛날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불효자는 웁니다>의 포스터

'불효자는 웁니다.'

필자는 90년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던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가 17년 만에 부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장충체육관을 찾은 것이다. 1998년 초연 당시 세종문화회관 전회매진을 기록했고, 공연계 최초로 10만 관객을 동원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작품이 아닌가.

공연장 입구에 들어서자 이덕화, 김영옥, 오정해, 박준규, 이홍렬 등 유명 배우들의 사진이 여기 저기 붙어 있었다.

관람객들은 예상했던 대로 머리가 하얗게 세고 허리가 굽은 노령 층들이 많았다. 악극 시작 전 개그맨 이홍렬씨의 재치가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 시켰다.

"나이가 가장 많은 분께 경품을 드립니다. 스스로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나이를 밝히시고 손을 드세요."

"82세요."

"84세요"

(.....)

"91세입니다."

선물은 91세의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이홍렬씨는 '어제는 100세의 할아버지가 계셨다'고 했다. 우리가 이미 100세 시대에 돌입해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천지를 뒤흔들 듯 한 북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고 2시간여의 악극이 진행됐다. 6.25 때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을 키우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던 어머니 최분이(김영옥 분)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고, 가난을 딛고 출세만을 위해 앞으로 달려갔지만 불효자로 전락한 아들 진호(이덕화 분)는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남성들의 자화상이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옥자(오정해 분)는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있던 여인들의 가슴아픈 사연이기도 했다.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무대의 배우들이 진방남(1917-2012)의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자 관객들이 일제히 따라 불렀다. 장내는 갑자기 숙연해 졌고,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들이 보였다.

"부모님께 돈만 보내면 효도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옥자'의 대사 한 줄이 다시금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