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마지막 밤을 하루 앞둔 7월 30일. 천안 시청 봉서홀에서 개최됐던 작은 연주회를 다녀왔다. 한국의 대표적인 재즈 색소포니스트 홍순달(48) 씨의 연주회였다. 그는 이름에서 풍기는 대로 음악인과는 멀어 보이는 '순달 아저씨'다. 하지만, 음악 인생 30년의 전문가다.

땀이 주르르 흐르는 무더운 여름밤이었지만, 연주홀 로비가 제법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다. 중학생에서부터 60·70대 노령 층에 이르기까지 관객이 다양하게 운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청도 다운 느림의 미학이랄까. 연주회 시작 10분전인데도 객석은 반도 차지 않았다. 관객으로 참석한 필자가 오히려 가슴 졸였다. 잠시 후 요란스러운 레이저 불빛과 함께 연주 개시 신호가 울리자 삽시간에 1051석의 자리가 꽉 메워졌다.

첫 곡은 관객의 호응과 관계없이 '스팅(Sting)'의 영화음악 <Shape of My Heart>이었다. 물론, 홍순달 씨의 색소폰 독주다. 어느 순간 장내는 물 끼얹는 듯 조용해졌다. 그런 가운데 필자는 연주회 주제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궁금했다.

'바람난 재즈라니?'

필자의 상상(想像)의 나래는 음악의 흐름과 함께 요즈음 서점가를 덥히고 있는 '영혼의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소설 <불륜>에 다다랐다.

"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위험한 일이지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절대로 알 수가 없으니까요."

소설 속 주인공 '린다'는 스위스의 유명 신문기자다. 잘생기고 돈 많은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을 두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던 그녀는, 어느 날 학창 시절의 첫사랑을 만난다. 그리고서 '불륜'에 빠진다.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사랑의 불꽃이 되살아난 것이다. 물론, 현실과 괴리(乖離)가 있는 소설 속 이야기다.

"재즈의 통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영화음악·대중가요·클래식·국악 등과 접목(cross-over)시켜 고정된 장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그래서 '바람난 재즈'라고 주제를 정했습니다."

홍순달 씨의 설명을 듣고서 필자는 속으로 웃었다. 필자가 전혀 다른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연주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열기를 더해갔다. 영국인 트럼펫 연주자 '데이몬 브라운(Damon Brown)'과의 협연이 이어졌다. 협연의 압권은 영국인과 홍순달 씨가 협연한 <유정 천리>와 <소양강 처녀>였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아들 손을 잡고...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

옆자리의 노부부가 "저 영국인이 의미를 알고서 연주할까?" "그냥 악보만 보고 불겠지"

노부부의 마음을 움직인 영국인의 능숙한 연주 솜씨가 오히려 우려를 낳은 모양이다. 이어서 아쟁이 등장하고, <한오백년>의 구성진 음률이 장내를 다시 숙연하게 만들었다. 색소폰, 트럼펫, 아쟁의 불륜(?)이다.

종반에 가서 보컬이 등장했다. 본격적인 재즈의 진수를 선보인 것이다. 빨간 장미 같은 보컬 가수(박라온)의 <The Windmills of Your Mind>가 풍차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노래를 아시는 분은 박수를 치시고, 모르시는 분은 그냥 주무세요."

홍순달 씨의 재기(才氣) 넘치는 말 한마디에 여름밤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예정 시간을 30분이나 넘긴 연주회 '바람난 재즈'는 앵콜곡 <Love>로 마감됐다.

"천안에서 국제 재즈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이 꿈이다"는 홍순달 씨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주홀을 나섰다. 도시는 서서히 깊은 잠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