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도 과격해진 것일까. 5월 바람 치고 대책 없이 강했다. 빗줄기도 '창문이 부서져라' 거세게 달려들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정신은 아직 낮이었다. 정미경의 소설 <밤이여, 나뉘어라>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잠은 우주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일어나 덧창을 연다. 나무들은 정령(精靈)처럼 그림자가 없다. 밤은 끝내 어두워지지 않는다. 나도 저 투명한 밤이 두렵다. 하얀 밤이여, 나뉘어라. 슬픔도 아닌 것이, 회한도 아닌 것이, 물이 되어 내 눈에서 밀려 나온다."

나이 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밤의 문화(?)이리라. 나이가 들수록 낮과 밤의 시간이 대책 없이 소용돌이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의 상대는 애꿎은 TV 채널이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희생자 가족의 자살 기도에 이어,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자원 봉사를 하던 4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뉴스가 밤을 더욱 하얗게 한다. 자살자가 목숨을 버린 이유가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해 번진 일이기에 더욱 가슴이 메어진다. 희생자 가족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지켜보면서 지니고 있던 우울증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사업이 원활하지 않아 우울증 증세를 보였는데, 세월호 유족들을 도우면서 증세가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채널에서는 말(言) 실수로 지탄을 받는 공인(公人)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말실수는 소위 설화(舌禍)에 해당된다. 설화(舌禍)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금 짚어본다.

"연설이나 강연 따위의 내용이 법률에 저촉되거나 타인을 노(怒)하게 하여 받는 재난."

"타인에 대한 중상이나 비방 따위로 받는 재난."

말은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생각은 자신의 뇌리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대중을 향해 흘러가기 마련이다. 요즈음처럼 SNS가 발달된 시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진실은 우리의 뇌에서 흘러나오고, 우리의 세상은 수채화로 채색이 된다. 마치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말이다. 이것일 수도, 저것일수도 있는 감상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작가이며, 컬럼니스트인 '로렌 슬레이터(Lauren Slater)'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에 그렇게 썼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처럼 아무리 본인이 진실이라고 강변(强辯)해도 세상은 다른 색깔로 채색된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는 그림말이다. 그래서 말은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내 생각대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재(天災) 아닌 인재(人災)로 슬픔이 가중된 상황에서 눈물을 쏟고 있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이다, 천하의 어떤 말을 다 동원해도 그들의 마음을 달랠 수 없다. 더구나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