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문

편집 : 2024.4.16 화 15:05

홈 > 뉴스 > 투자리포트 > 장상인칼럼

광해(光海), 왕이 된 남자

2012년 10월 23일 (화) 16:32:43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수 백 만의 사람들이 매일 저녁 영화관에 앉아 단순히 보는 것만을 통해 사건 · 사람 · 감정 · 분위기, 심지어 생각까지도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경험한다."

세계적인 영화 이론가 '벨라 발라즈(Bela Balze)'는 영화가 사회에 끼친 효과를 이렇게 말했다. '벨라 발라즈'의 말대로 단순히 보는 것만을 위해 영화관을 찾는 <광해>의 관객이 지난 주 말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필자도 아내와 함께 관람했으니 선거로 비유하면 <광해>에 두 표를 보탠 셈이다. 한 표, 한 표가 모여 거대한 군(群)을 형성하니, 개인들의 힘이 '엄청난 파워(power)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다.

영화 <광해>에 이토록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카타르시스(catharsis)이다.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처한 답답한 현실에 대한 대리 만족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광해군(1575-1641)은 선조의 후궁 소생이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실리적 외교와 대동법 시행 등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발발 시 분조(分朝) 활동을 통해 전쟁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 분조(分朝)란 의주로 피신한 선조의 조정과는 달리, 전쟁을 주도하던 광해군 중심의 또 다른 조정을 일컫는다. 광해군은 전쟁기간 중 전국을 돌며 민심 수습은 물론, 군량미 조달 등 요즈음으로 치면 정부의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를 담당한 것이다.

문제는 '후궁의 소생'이라는 출신 성분- 그는 왕위에 올라서도 반대 세력들과의 투쟁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인조반정으로 축출돼 묘호(廟號)조차 갖지 못하는 '비운의 군주'로 기록돼 있다.

"과인이 말한 것은 어찌 되었소?"

"송구하오나 아직..."

"서두르시오. 아무도 믿을 수가 없소."

영화에서 광해군(이병헌 분)은 도승지 허균(류승룡 분)에게 자신을 닮은 '대역을 찾으라'고 은밀한 명령을 내린다. 반대파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현실 도피를 위해서다. 도승지는 기방의 술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광해군을 쏙 빼닮은 광대 '하선(이병헌 1인 2역)'을 찾아낸다. 하룻밤의 대역을 노심초사 소화해낸 광대 '하선'- 며칠 후 광해군의 갑작스러운 졸도로 왕이 병에서 회복되는 15일 동안 하선은 '왕 노릇'을 하게 된다. 대신들에게 빚이 없는 대역 왕 '광해'는 날이 갈수록 꼭두각시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서민을 위한 정치.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정치. 소신 있는 정치, 다소 부족한 듯해도 인간미 넘치는 왕... 도승지 허균은 그러한 대역 왕 '하선'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이 되겠다면,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는 자들을 용서치 못하겠다면, 그 꿈 내가 이뤄드리리다."

영화는 영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현실 세계가 녹아 있다. 의도적으로 현실 세계를 내보이지 않더라도 관객들 스스로가 찾아낸다.

미국의 영화 전문가 '버지니아 라이트 웩스먼' 교수는 <영화의 역사>라는 책에서 "영화의 탄생은 발명가들이 '요지경(peep-show)'이라는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역량을 보여주면서 유료 관객을 끌어들였다"고 했다. 그러한 '요지경(peep-show)'에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돈을 내고 모여드는 것을 보면 요즈음 우리의 세상이 '요지경(瑤池鏡)'인 듯싶다.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