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땅 난지도가 새천년 첫 월드컵 대회와 때맞추어 자연친화적인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105만 평에 이르는 이 넓은 공원이 이제 온갖 생명이 살아 쉼 쉬는 평화로운 시민들의 쉼터가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월드컵 공원>을 알리는 안내문이다. 자연친화적인 공원답게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온 자연석에 예서체로 새겨진 글귀다. 자연석 말미에 2002년 5월 1일이라고 쓰여져 있으니, 이 바위도 10년의 세월을 한 자리에 굳건히 서서 공원의 길잡이를 하고 있음이다.

난지도 매립지는 행정구역상 마포구 상암동 549번지 일대이다. 지금은 강둑이 만들어져 섬이 아니지만, 망원정 부근에서 한강과 갈라진 난지 샛강이 행주산성 쪽에서 다시 본류와 합류한 곳에 있었던 작은 섬이었다. 난초와 지초가 흐드러지고 물이 맑으며, 길게 늘어진 수양버들이 아름다워 섬의 이름을 난지도(蘭芝島)라 불렀다. 그래서인지, 가을이 살포시 다가온 월드컵 공원 일대에는 멋들어진 수양버들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좀처럼 옮겨보기 어려운 발걸음. 필자는 때마침 월드컵 웨딩홀에서 지인(知人) 차녀의 결혼식이 있어서 <월드컵 공원>과 <하늘공원>을 찾아봤다. 연못가 벤치마다 사람들이 가득했고, 비둘기들 · 참새들이 섞이어 아이들이 흘린 과자부스러기와 성급히 물들어 앞서 떨어진 노란 이파리들을 쪼고 있었다.

이 공원은 2002년 제17회 월드컵대회를 기념해 쓰레기 더미였던 난지도를 자연 생태공원으로 복원시켰다. 버려진 땅을 행복의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발상의 전환이 단연 <월드컵>이다.

하늘 공원 오르기는 나무 계단으로부터 시작됐다. 291번째부터 거꾸로 0계단에 이르기까지 지그재그로 설치된 나무계단을 오르자 커다란 월드컵 경기장이 발아래 놓였고, 고개가 아프도록 높아 보이던 건물들도 고개를 떨어뜨리게 했다.

5만 8000평 면적의 하늘공원은 테마별로 억새 식재지, 순초지, 암석원, 혼생초지, 해바라기 식재지, 메밀 식재지, 전망휴게소, 풍력발전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늘 공원 정상에 오르자 원두막 쉼터가 필자를 반겼다. 원두막의 지붕 위에는 작은 조롱박들이 가을을 알렸고, 초지(草地)에는 형형색색의 코스모스들이 하늘거리면서 공원 전체에 가을을 번지게 했다. 수풀 속에 숨은 가로등의 스피커에서 새어나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곡(曲)도 공원의 가을 분위기 '번짐'에 한 몫을 했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장석남(47)의 <번짐>이라는 시(詩)의 일부다. '여름이 번져 가을이 되고, 음악이 번져 그림이 된다'는 시인의 감성이 참으로 낭만적이다.

필자는 자연과 음악에 젖어 하늘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아내와 함께한 산책이었다. 공원이 자랑하는 억새들도 총소리만 울리면 뛰쳐나갈 단거리 선수처럼 10월 축제를 위한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늘 공원은 생태환경을 복원할 목적으로 조성됐기 때문에 인공적인 편의시설은 거의 없다. 베고니아 · 가자니아 등 물 건너온 꽃도 좋지만, 쓰레기 더미에서 살아남은 작은 씨앗도 자연을 위해 애를 썼음이다. 작은 씨앗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서 하늘공원에 이토록 좋은 자연의 편의시설이 생겨난 것이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 더미가 인간에 의해서 생태공원으로 복원된 하늘공원- 하늘이 한강에 내려앉았을까. 파란 한강물이 가을바람을 타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널리 번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