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가을이런가.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치고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바람결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문화의 달 9월. 필자는 최근 들어 이런저런 일로 인사동에 자주 간다. 그러나, 인사동의 분위기가 한 때 일본 관광객 안내로 드나들던 때 보다는 사람 수(數)와 국적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주말을 맞아 '차 없는 거리 인사동'에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고, 골목마다 영어, 일어, 중국어, 불어 등 각국의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도 부족한 숙소 때문에 사무실을 호텔로 개조하는 리모델링 공사 때문이란다. 밀려드는 관광객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호텔이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으니 소음쯤은 공감이 간다.

"쫀득쫀득한 터키 아이스크림입니다. 맛있는 터키 아이스크림이에요."

눈 섶이 짙고 코가 우뚝 선 터키 청년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익살스러운 팔놀림에 홀린 듯 인사동 네거리 코너의 좁은 공간에 비집고 들어선 터키 아이스크림 집 앞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피부 색깔이 다른 외국인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눈초리로 터키 아이스크림 집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뭔가 볼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동(仁寺洞)은 한국의 전통이 묻어나는 관광 명소이다. 인사동 길은 현대적 의미의 신(新)도로가 아니라 조선시대에 형성된 길이 0.7㎞, 너비 12m의 길이다. 인사동 길은 서울의 주요 도심 로(路)와 연결돼 있고, 경복궁 · 청계천 · 탑골공원 등과도 가깝다.
인사동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조선왕조 이후 600여년을 이어온 서울의 심장부 자리를 지켜왔다. 문화의 거리이자 골통품의 거리. 신라시대의 질그릇에서부터 조선시대의 백자와 불상, 고서와 민화, 목각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역사의 흔적들이 세월 따라 흘러 왔던 것이다. 

이러한 골통품의 대다수가 우리 것이 아닌 중국산이라는 씁쓸한 통계가 있다. 거기에 우리의 전통 먹을거리도 자리를 빼앗기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인사동의 먹거리도 국제화의 물결을 타고 국적에 관계없이 사람들과 섞이고 있다. 중국집은 기본이고, 일본어로 쓰인 이자카야(居酒屋), 베트남 쌀국수 '하노이의 아침'. 터키 아이스크림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한국의 거리인지 외국의 거리인지 착각할 정도로 외국 냄새가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갸웃 뚱해진다. 요즘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평범한 말 춤 '강남 스타일'과 비교해 볼 때 과연 '인사동 스타일'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반성해 볼 대목이다.

 도시도 근대문명을 타고 진화된다. 구조물은 신소재에 의해서 편리성과 내구성을 따지게 된다. 인사동의 건물들도 전통적인 한옥(韓屋)이 줄어들고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거기에 그 내용물들마저 남의 나라에 의해서 채워지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콜로세움과 베네치아 광장 사이 곧게 뻗은 '포리 임페리알리' 대로(大路)는 로마제국의 성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만하다. 53년 스페인 어머니와  로마 정착자의 후손인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한 트라야누스 황제가 이 길을 확장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현재의 루마니아에서 거둔 군사적인 승리를 자축하는 기둥을 세웠는데...."

영국의 '크리스토퍼 히버트'가 쓴 <도시로 읽는 세계사>에 들어 있는 글이다. 도시의 거리 하나에도 이처럼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동 길도 로마제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름의 역사적 관점에서 세심하게 살피면서  '인사동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운(運) 좋은 시대적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