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을 연 '터키 문명전' <이스탄불의 황제들> 전시회를 마지막 날인 9월2일에 찾았다. 무엇이 그리 급하고 바빴던가. 수많은 날들을 흘려보내고 문 닫기 직전에 헐레벌떡 뛰는 모습들이 필자를 포함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숨 막히듯 북적대는 도로를 한 발 벗어나서 국립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정원의 아름다운 꽃들과 하늘을 찌르는 키 큰 나무들이 반가이 맞이했다. 나무 그늘아래 작은 언덕에는 보라색 '벌개미취'들이 떠나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하늘을 찌르는 큰 키 나무들은 앞서온 가을바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의 전시회는 한국-터키 수교 55주년을 맞이하여 터키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하는 '터키 문명전'이다. 터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150여 점의 작품은 터키를 대표하는 4개의 박물관-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톱카프궁 박물관, 터키 이슬람미술관-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 끝에 골랐다고 한다.

'터키 문명전' <이스탄불의 황제들>은 모두 4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고대 문명을 중심 테마로 한 아나톨리아의 초기 문명, 서양 문명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 로마 문명, 기독교 세계를 찬란하게 펼친 동로마 문명, 세계 대제국으로 군림했던 오스만제국의 문명이다.

첫 번째 테마인 '고대문명의 중심'은 아나톨리아의 문명과 철의 제국 히타이트의 이야기가 전개됐다. '아나톨리아'는 고대 그리스어의 '아나톨리코스'에서 전래된 말로 '해가 뜨는 곳' 또는 '동쪽'이라는 뜻이다. 한편, 히타이트 시대에는 '아나톨리아'가 아시아의 옛날 이름인 '아수아'로 불리었으나, 고대 지중해 사람들이 더 먼 동족을 알게 되면서 부터 '소아시아'로 불렀다고도 한다.

두 번째 테마인 '서양 문명의 원류 그리스 · 로마 문명' 코너에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조각상과 부조들을 통해 서양 문명의 모태가 됐던 유물들이 기나긴 역사의 흐름을 안고 전시돼 있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무대였던 '트로이' 등 터키의 영토는 기원 전 1세기 무렵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던 까닭에 그 시대의 문명 유산들이 터키에 잘 보존돼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테마인 '찬란한 기독교 문명의 수도'에는 '콘스탄티노플'과 '동로마제국'의 영광이 찬연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동로마 문명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및 오리엔트 문명을 흡수해 고전과 조화를 이루며 신비성을 연출했다.

네 번째 테마인 '이슬람 문명의 수도'에는 '이스탄불과 오스만제국의 영화'를 맛 볼 수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강력한 힘과 평등정신, 그리고 동서양의 교류와 화합을 바탕으로 번영했던 이스탄불과 오스만제국의 화려한 문화가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부족장 오스만은 23세의 젊은 나이에 2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부족의 리더가 되어 1299년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오스만제국을 세웠다. '오스만'은 예상을 뒤엎고 동(東)지중해를 장악하면서 유럽과 서아시아를 호령했다. 600년 동안 동서를 넘나들면서 영토를 넓혀나갔던 오스만제국의 특징은 전쟁과 종교로 집약된다. 전쟁은 술탄의 권능이었고, 이슬람은 술탄의 정신이었다.

'칸카르데시(피를 나눈 형제)!'

동양과 서양의 교차로로 일컫는 '형제의 나라' 터키의 문화와 역사는 이렇게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가을의 문턱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