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사계절 중 네 번째 계절인 겨울에 접어들었다. 뒤돌아 볼 틈도 주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세월이다. 바람의 차가움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애써 빨라지고 있다. 겨울이 숨 가쁘게 뒤쫓아 오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응당 떠올려지는 아주 친숙한 가곡이 있다.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의 <겨울 나그네>다. 총 24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연가곡이다. 그의 나이 30세인 1827년에 작곡된 연가곡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완결적 구성체를 가진 가곡 모음이다. 하지만, 이 곡은 전반적으로 슬프고 어두운 흐름을 이어가는 비극적 성격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슈베르트 자신이 가난에 시달리며 고독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아무튼, <겨울 나그네>를 완성한 다음해에 슈베르트는 고독한 생을 마감했다.

 "전나무 가지 끝에 부드러운 미풍이 스치면, 맑은 하늘에 음울한 구름이 지나간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 길을 간다, 밝고 행복한 세상 삶을 스치고 지나 외롭게 누구 하나 반기는 이 없이. 아! 이 고요한 대기여! 밝은 세상이여! 태풍이 휘몰아칠 때도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다."

 12번 째 곡(曲) '고독(Einsamkeit)'은 그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는 외로운 상황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요즈음과 같은 계절과 흡사한 겨울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마지막 희망(Letzte Hoffnung, 16번 째 곡)'에서는 한 청년이 잎사귀를 쳐다보면서 잠시 희망을 가져보다가 고개를 떨어뜨린다. 길거리에 떨어진 낙엽과 같은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다.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단풍 든 잎이 남아 있다. 나무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희망을 걸고 잎사귀 하나를 지켜본다.... 아! 그 잎이 땅 위에 낙엽지면 내 희망도 따라 떨어진다."
 
결국 사랑에 실패한 청년은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告)하고, 눈 덮인 황야(荒野)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추운 황야를 헤매는 청년은 죽음 같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친다.

"어째서 나는 다른 나그네들이 택하는 길을 피해, 눈 덮인 바위산의 은밀한 오솔길을 찾는가 …… 이정표가 거리의 방향을 가리키며 길가에 서있다. 그리고 나는 끝없이 방황을 계속한다. 휴식처를 찾아 쉴 사이 없이. 문득 내 눈앞에 꼿꼿이 서 있는 이정표를 하나 본다. 거기 내가 가야할 길이 있다, 누구 하나 돌아온 사람이 없는 그 길이 …… ."

20번 째 곡(曲) 이정표(Der wegweiser)도 인상적이다. 우리네 삶은 수많은 이정표를 보면서 나그네 같은 생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길의 목표는 이정표가 아니라 나그네가 스스로 선택한다. 성공의 길도, 실패의 길도 나그네의 몫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7년 5월 국내 최초로 건설업 면허를 획득했던 임광토건이 이 겨울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무거운 다리를 끌며 들판을 걸어가는 청년의 마음처럼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임광토건은 '아파트 · 신도시 · 골프장'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걸으면서 꾸준히 흑자를 내다가, 지난해부터 수주 물량 감소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개발 사업이 좌초하면서 자금 압박을 받아 '겨울 나그네'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희망인 기업회생절차에 희망을 걸어본다. 임광토건이 새로운 이정표를 찾아서 길을 떠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