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 키츠(John Keats)는 '가을에 부쳐'라는 시(詩)에서 가을을 '안개와 무르익는 여물음의 계절 '이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여물음 후에 찾아오는 '단풍'과 '낙엽(落葉)'도 빼놓을 수 없는 '가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요즈음 같은 늦가을에 자연스레 연상되는 시(詩)가 있다. '구르몽(Gourmont, Rémy de/ 1858-1915)'의 <낙엽>이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을의 막바지인 요즈음 자동차를 팽개치고 길을 걷는 기분이 너무나 상쾌하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이 소리를 질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치 카펫을 깔아놓은 듯 폭신폭신한 보도에서 낙엽을 밟는 느낌과 소리가 좋아서다. 더욱이, 노란 은행잎들이 수북이 쌓인 길은 환상 그 자체이다. 낙엽의 향기에 취하다가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파리들이 가을바람에 너울거린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두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이어령 선생의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의 구절(句節)도 오늘의 상황 · 계절 공히 부합된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숲도 결국은 하나의 이파리인가.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투자자 · 국가소송제도(ISD), 그 어느 것 하나 시원스레 모아지지 않는다. 온 나라가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흔들리는 나뭇잎이다.

 일본에서는 한 때 '비에 젖은 낙엽'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도쿄대학의 한 여교수가 명명하여 유명해진 말이다. 비에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듯이 '부인 옆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처량한 남편의 신세'를 비유한 말이다. 이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 귀가하는 샐러리맨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일에 쫓겨 특별한 취미도, 노년에 대한 설계도 없이 퇴직을 맞은 사람은 말 그대로 '비에 젖은 낙엽' 신세다. 이는 곧,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과의 대화가 단절되었던 아버지들의 슬픈 이야기다.

 '비에 젖은 낙엽'은 비단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 상장 건설사의 절반가량이 번 돈으로 이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취약하다고 한다.

 건설경기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줄어든 반면, 금리 인상으로 이자비용이  올라가면서 건설사들의 채무상환능력이 극도로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미래 비전을 세우지 못하고 금융기관에 매달려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던 기업들이 '비에 젖은 낙엽'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머지않아 겨울 한파(寒波)가 몰아칠 것이다. 건설업의 낙엽들은 또 어느 거리에서 방황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