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 성당 사람들의 초청을 받아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성녀 '오다 줄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일본에서는  많이 알려진 미담(美談)인데도 의외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 듣는다'고 한다. 필자는 3년 전 일본에서 매년 열리는 '오다 줄리아 39제(祭)'에 참가한 적이 있기에 그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오다 줄리아'는 임진왜란 때 평양근처에서 일본에 납치된 조선인 처녀다. 인질로서 포로가 된 이씨 조선 귀족의 딸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으나, 생년월일이나 실명 · 가계(家系) 등의 상세한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다'는 일본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줄리아'는 세례명이다. '오다 줄리아'는 조선 침략의 제1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기나가(小西行長)'의 양녀가 된 후 천주교에 귀의 했다. 조선을 유린하던 '고니시 유기나가'가 독실한 천주인이었다는 사실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고니시(小西)는 결국 '세키가하라(關ヶ原)'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패하여 그 가문이 멸망했고, '줄리아'도 '이에야스(德川家康)' 측실의 시녀로 전락했다. 미모와 재기가 뛰어났던 그녀는 당시에 국법으로 금지됐던 천주교를 버리지 않아 고즈시마(神津島)에 유배됐다가 그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즈시마(神津島)’는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절해고도로써 정치범들이 유배된 곳이다. 오늘날도 도쿄에서 출발하는 객선으로 가면 13시간 30분이나 걸린다. 고즈시마는 '오다 줄리아'가 유배되던 그 시절에는 참으로 멀고 먼 뱃길이었을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망망대해- '오다 줄리아'는 서럽고 고달픈 길을 필연적으로 가야만 했을까?
 수 백 년이 흐른 후 고즈시마(神津島) 사람들로 부터 존경받고 있는 묘지에 대한 내용이 일본 전역에 알려졌다. '오다 줄리아 제(祭)'가 시작된 것도 1970년부터다.

"섬사람들은 '그 묘지에 향(香)을 올리면서 정성껏 기도하면 소원이 성취되고 병도 치료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묘지의 유래를 알지 못하고 몇 백 년 동안 마냥 참배만 했습니다. 후(後)에 연구조사를 통해 '오다 줄리아'라고 하는 여성이 나타났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기독교인 박해는 가내의 무사로부터 시작하여 궁중의 여성들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줄리아'의 박해에 대해서는 일본에 온 '마치우스'라고 하는 선교사가 예수회 앞으로 보낸 1613년 1월 12일자의 보고서에 자세하게 실려 있습니다."

 전설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사료(史料)에 입각하여 전해지는 사실이다. 필자가 지난 2008년 현지에 갔을 때도 도쿄에서 온 여러 명의 신부와 80여 명의 신도들이 외딴 섬 고즈시마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했다.

 '미사'를 주재한 도쿄교구(東京敎區)의 '우라노 유우지(浦野 雄二)' 신부는 "오늘 우리가 '오다 줄리아' 님의 '겐쇼우비(顯彰碑)' 앞에 모인 이유는 하늘의 뜻입니다. 400여 년 전 조선에서 태어나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정벌에 따른 피해자로서, 이 섬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생을 마감한 '오다 줄리아' 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여러분! 그녀를 위해 다 같이 기도합시다." 고 했다. 

 신도들은 땡볕아래서 진행된 한 시간 정도의 미사를 흐트러짐 없이 참여했다.  '도미자와 히테코(富澤日出子)'라는 68세의 할머니는 "얼마 전 성당의 잡지에 난 글을 읽고 스스로 감동해 처음으로 '줄리아 제(祭)'에 참가했습니다. 그동안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습니다"고 했다. 도쿄의 하치오지(八王子) 성당에서 왔다는 '츠카모토 세치코(塚本世智子, 55)씨도 "최근에 이러한 사실을 접하고, 건강이 좋지 않으나 무리해서 참석했다"면서, "여기에 오기를 너무나 잘했다"고 활짝 웃었다(월간조선 2008. 8월호 필자의 글 참조).

 저녁 자리에서 필자의 경험담을 경청하던 한 신도가 "절두산 성당에 '오다 줄리아' 기념비가 있다"고 해서 모두들 놀랐다. 다음 날 필자는 카메라를 들고 다시 절두산 성당을 찾았다. 관계자들에게 묻자 '그러한 기념비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3년 전 필자가 그 곳을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대답이었다. 일본 땅 절해고도에서 성녀(聖女)로 존경받는 그녀가 차라리 좋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