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뉴기니에서도 커피가 납니까? 그 식인종의 나라에서?"

파푸아뉴기니- 하면 먼저 떠올려지는 것이 있다. 바로 식인종이다. 그런데 인식의 잘못일 뿐 식인종은 없다. 단지 떼강도가 많아 불안스러운 나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질 좋은 아라비카(Arabica) 종 티피카(Typica) 유기농 커피가 유명하다.

"맛 좋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있노라면 당신은 그 깊은 향기와 맛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당신은 그 커피의 느낌을 하나하나 온 몸으로 음미하겠지만, 그 느낌은 커피의 겉모습일 뿐이다. 커피의 이면에는 수많은 문화와 관습, 환경과 정치가 거미줄처럼 얽힌 아주 복잡한 세계가 드리워져 있다. 세계화 ․ 이주 ․ 여성 운동 ․ 환경오염 ․ 원주민 인권 ․ 자결권 등 21세기를 지배하는 주요 이슈들이 커피 한 잔을 둘러싸고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변호사이며 시민운동가인 '딘 사이컨(Dean Cycon)'의 역작 <자바 트레커>의 프롤로그다. '딘 사이컨'은 미국 매사추세스에 소재한 유기농 커피 로스팅 회사 '딘스 번스'의 창립자이자 소유주다. 그는 철저한 대안 무역의 원칙을 준수하며 세계 커피 생산자들과 수익을 공유하면서 지역개발은 물론 농부들의 협동조합 결성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1987년부터 자바 트레커(Java trekker)의 길을 걷고 있다. '자바'란 커피가 많이 나오는 인도네시아 자바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며, '트레커'란 길고 고된 여행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커피 생산지를 찾아 돌아다니는 순례자란 뜻이다.

필자는 커피 순례자 '딘 사이컨'이 세계 곳곳의 커피 농장을 찾아다니며 인간미 넘치는 대화를 주고받은 기록서인 <자바 트레커>를 읽고 감명 받았다. 평소 무심코 커피 향을 즐기기만 했을 뿐, 한 잔의 커피에 서려있는 가난한 원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고난과 애환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푸아뉴기니의 커피 농장 탐방은 커피의 겉모습이 아닌 커피의 속 모습을 이해하는 배움의 길이기도 했다. 필자가 제법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녔으나 파푸아뉴기니는 처음이었다. 일본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의 비행시간은 6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저희 비행기는 20분 후 국제공항 포트모르즈비에 도착합니다."
신비의 세계를 향한 첫걸음이어서인지 심장의 고동이 비행기의 흔들림과 맞물려 심하게 요동쳤다. 수도 포트모르즈비에서 1박을 하고 5월 9일 이른 아침 호텔의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국내선공항으로 나갔다. 국내선 공항은 각기 특이한 모습을 한 현지인들로 무척 붐비었다. 커피 농장과 공장이 많은 고로카(Goroka)로 가는 40인 승 프로펠러 경비행기 PX960편 에는 30명 정도의 사람이 탔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을 하자 대자연의 속살들이 눈 아래 펼쳐졌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자 한반도의 2배나 되는 광활한 대자연 속에 내던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뭉게구름과 새털구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초원은 뱀처럼 구부러진 강줄기만 보일뿐 상처하나 없는 원시 그 자체였다. 비행기는 산 중턱에서 한바탕 요동을 치더니 1시간을 날아 파푸아뉴기니 동하이랜드 주(州)의 수도인 인구 10만의 고로카에 도착했다.

파푸아뉴기니는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흙에 씨 하나를 떨어뜨려 놓으면 저절로 녹색 이파리가 달린 식물이 생겨난다. 그래서 파푸아뉴기니 커피는 야생의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뉴기니 섬에는 빌헬름 마운틴이라는 해발 4,691m의 높은 산이 우뚝 솟아 있다. 이 거대한 산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지역에서 커피가 생산된다. 대체로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스페셜티 커피로써, 1937년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을 이식 재배한 뒤 파푸아뉴기니 아라비카 블루마운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커피는 불합리한 유통구조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싼값에 사들여 비싸게 가공해서 팔기 때문에 제3세계 농민들은 가난 속에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은 중간 상인들에게 이윤을 빼앗기고 착취당하는 제3세계 농민을 위해 직거래로 적정한 이윤을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호주 회사들의 틈바구니에서 동양인 최초로 공정무역권을 따낸 게포(GEPO) 커피수출회사 박복식(51) 대표의 말이다.
'커피 한 잔에 담겨있는 무거운 짐과 가치'가 떠올려지는 가운데 열대의 밤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