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4월이면 T.S 엘리어트의 시(詩) '황무지(The Waste Sand)'의 첫 구절인 '4월은 잔인한 달'이 떠올려진다. 날씨마저도 들쑥날쑥 여전히 변덕스럽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일까? 산간지방은 4월에 눈까지 내렸다. 건설업계는 덩달아 잔인한 '4월의 눈(雪)'에 폭삭 내려앉았다. 국내 건설업면허 1호인 삼부토건이 무너졌고, 17년간 흑자 경영을 유지하던 동양고속건설이 무너졌다. 이 모두가 건설업체의 목을 조이는 PF(Project Financing)때문이다. 꼼꼼하게 사업성을 따지지 않고 무리한 PF를 해준 금융기관도 책임이 있다.

PF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별도의 보증 없이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담보로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기법이다. 자본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모집하고, 사업이 끝난 후에는 일정 기간 동안 발생한 수익을 지분율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배분해 주는 방식인 것이다. 금융기관은 프로젝트 자체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대출금을 회수하게 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기법은 수익이 높지만 위험 요소도 많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국가 간의 관계에서 보면 수요 국가로서는 외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금융을 제공하는 측에서는 무역 마찰을 완화하면서 대규모 자본재 수출을 촉진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브리태니커).

하지만, 우리나라 건설업의 경우는 약간 변형된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담보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업체의 지급보증이나 담보물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한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생기면 모(母)회사의 본체가 뿌리 채 흔들린다.

아무튼, 도급순위 34위인 삼부토건이 돌아오는 PF대금을 막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건설업계가 초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중견기업 뿐만이 아니라 상위권 대형업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삼부토건은 1948년에 설립된 회사다. 그동안 토건 중심의 보수적인 경영 상태를 유지하던 탄탄한 회사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하지만, 그 이유를 반추(反芻)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본란을 통해 수차례 주장한 바와 같이 건설업은 토목 · 건축 · 주택 등 단순 토건업을 벗어나 플랜트 중심의 기술 집약화를 도모해야 한다. 기술 집약화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한화건설이다. 이 회사는 지난 19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이 공사는 10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얀부Ⅱ 발전 · 담수' 프로젝트다. 우리 돈으로 계산 하면 공사비가 무려 1조 4000억 원이나 된다. 사우디 최대 산업단지인 얀부 지역에 230㎿급 스팀터빈 발전기 3기와 890t급 보일러 3기 등 발전설비, 그리고 하루 6만t 규모의 담수설비를 턴키(turn-key)방식으로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즉, 시공자가 조사 · 설계에서부터 기기조달 · 건설 · 시운전 등 전 과정을 맡게 되는 일괄공사계약이다.

지구촌의 건설 시장은 무한히 넓고 크다. 그렇다고 해서 대형 공사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술적인 노하우(knowhow)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화건설은 지난 2009년에 수주한 7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얀부1 발전 플랜트'도 공정률 60%를 달성하며 시공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아직도 중동에 머무르고 있는 한화건설의 김현중 부회장은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얀부1 발전 플랜트 공사를 수행하면서 쌓은 기술적 신뢰가 밑거름이 되어 1조원이 넘는 큰 공사를 수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얼마나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인가.

우리 건설업체들은 더 이상 아파트 건설을 위한 PF(Project Financing)에 매달리지 말고 기술 집약형 대형 플랜트 수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또한, 활동 무대를 해외로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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